조직원과 조직이 바라는 인간형은 다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직장생활을 정식으로 해본 적이 없어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영국에서 직장생활을 몇 년째 해보니 직장에서 살아남거나 인정받는 건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즉, 사업이나 장사를 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특색이 있는지, 어떻게 인상 깊게 첫 개점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꾸준하게 단골들을 모아 안정성을 확보할 건지 등등... 이런 것들이 직장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거다.
직장마다 개인마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봤을 때, 영국의 직장에서 인정받고 살아남는 것도 비슷한 절차를 걸친다. 먼저 첫 출근하고 1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확실히 방향을 잡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가끔 '첫인상을 좋게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실제 본인의 성격을 숨기거나 죽이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는데, 그걸 계속 유지할 자신이 없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건 더 마이너스되는 행동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나에 대한 이전 정보가 없기 때문에 처음 몇 주 동안 나의 행동, 말투 등을 바탕으로 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첫인상은 사실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아주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첫 몇 주 동안 혹시라고 그런 성격이 사람들에게 나쁘게 비칠까 봐 온순한 척했다면, 나중에 그 강한 성격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당황하게 될 정도는 차라리 초반에 드러냈을 때보다 더 크다는 거다. 이런 이유로 내 초반의 행동은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에 따라 그 정도를 맞추는 게 낫다. 물론 그러려면 내가 이 조직에서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지 등 미래에 대한 계획이 조금은 있어야 하는 거고...
그렇게 초반에 이미지 설정이 어느 정도 되었으면 서서히 자신의 특색을 내보여야 한다. '이 집은 된장찌개가 진짜 맛있어'하는 맛집이 되는 것처럼 '이런 거려면 xx 씨가 전문이지, yy 씨한테 물어봐'하는 소리를 직장 내에서 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 이건 단골을 모으는 다음 목표와 바로 연결된다. 이런 식으로 '저 사람은 믿을 만하다, 이런 점에서는 뛰어나다'하는 식의 인식이 퍼지면 그 조직에서 당신의 인지도는 올라간다. 맛집이 입소문을 타고 전해지듯, 당신의 능력/특색/전문성에 대한 것도 입소문을 타고 퍼져 더 많은 사람이 당신을 찾게 되면, 내가 굳이 나 잘났다,라고 떠들지 않아도 알아서 내 이름이 알려지고, 그러면 당신의 업무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건 물론, 조직에서도 당신을 쉽게 대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해서 조직에서 당신의 입장을 가장 확고히 할 수 있는 방법은 '대체 불가한 인력'이 되는 거다. 그게 당신의 업무 능력 때문이든, 지식 때문이든, 조직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든.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맛을 가진 맛집이 다른 수많은 경쟁업체들 사이에서도 오래 유지되는 것처럼.
그런데 요즘 들어 코로나바이스러스의 사태를 보면서 이것에 대한 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늘 조직의 구성원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지금 있는 정부기관으로 이직한 다음부터 조직을 이끄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들게 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앞서 말한 그런 조직원을 가지는 게 마냥 좋지만도 않은 게... 이런 경우 위험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즉, 조직의 입장에서는 '대체 불가한 인력'이란 말은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한 업무 의존도가 높다는 거고, 그 말은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업무가 실패할 확률도 훨씬 높다는 걸 말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직원의 특출한 능력으로 X팀이 다른 팀보다 더 많은 실적을 쌓고 있었다고 할 때, 갑자기 A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다던지, 아니면 휴교령 때문에 육아로 몸이 묶인다던지 해서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X팀의 전체 실적은 다른 팀들보다 훨씬 타격을 많이 받게 될 경우가 많다. 특히 A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게 그가 가지고 있던 어떤 지식 (knolwedge management 이론에서 소위 말하는 tacit knowledge - 암묵적 지식)이라면 조직에서는 더 곤란해진다. 그 갭을 만회하려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에게 직접 그 지식을 전수받거나 배워야 하는데, 이건 문서를 읽거나 전화 한 통 한다고 배울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서 (그리고 그 사람이 가르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손실도가 훨씬 커지는 거다.
그래서 요즘 생각하길.... 조직만을 생각하자면, 아주 뛰어난 개인 한 사람보다 적당히 뛰어난 여러 사람을 가지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무난하게 능력 있는 사람'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대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니 괜히 뭐하나 잘못 잡히거나 조직의 상황이 안 좋아지면 잘려나갈 가능성도 커지고 그만큼 경쟁력도 떨어져서 승진할 확률도 낮아지니까. 그럼 도대체 개인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조직에도 위험부담을 적게 주는 인간형은 도대체 뭘까.
이건 나도 현재 하고 있는 고민이니 딱 뭐다,라고 말할 수 없긴 한데.... 현재까지 드는 인간형 첫 번째는... 개인의 능력치가 높으면서 다른 사람의 능력치도 올릴 수 있는 사람, 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가게로 치자면, 맛집에 단골도 많은 집인데, 그 주변지역까지 괜히 분위기 있게 만들어서 주변 상권도 발달시키는 그런 가게랄까. 자신만의 특색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 인정도 받지만, 혼자만 잘난 독불장군이 아니라 자기 팀의 능력치도 끌어올리는 사람. 거기다가 위험 대책 능력도 있다면 금상첨화다. 즉,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어느 정도 다른 이들이 대비하게 방비를 미리 해놓는 사람이라면, 조직에서 위험을 따로 관리할 필요 없이 알아서 자동 백업되는 것과 같으니까.
그 외 다른 인간형은 아직 모르겠다. 영국에 휴교령이 내리고, 다른 사회적 활동을 금지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당장 다음 주부터 어떻게 내 정신/육체 건강을 지키며 일과 육아를 남편과 나눠서 병행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생각한 첫 번째 인간형이니, 일단은 그런 인간형이 되도록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게 현재 목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