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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Aug 29. 2023

두 번째 제주도는 없다

제주도가 아름다운 이유

두 번째 제주도는 없다 1


제주로 이사 온 날, 포장이사 업체에서 폐기물들을 거의 다 수거해 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쓰레기가 나왔다. 원래 주택은 집 앞에 쓰레기를 내놓으면 쓰레기 차가 와서 수거해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제주도는 일하는 사람은 적고 관리해야 하는 지역은 넓어서 그럴 수가 없단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있는 작은 규모의 아파트 단지 클린하우스도 관리의 문제로 아파트 주민 외에는 이용할 수 없었다. 조금 야박한 것 같았지만 임시로 살다 간 사람들, 혹은 관광온 사람들이 얼마나 엉망으로 썼으면 그럴까 싶기도 했다.


집을 소개해 준 부동산 사장님께 물어보니 쓰레기 및 재활용품 분리수거는 근처 초등학교 앞 클린하우스를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매번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차를 타고 가야 하다니..! 너무 불편한 것 같다는 생각에 왜 집 구하기 전에 이런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원망했다.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도 조금 알 것 같았지만 이미 나는 단독주택에 살게 되었는 걸?!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차로 3분 거리의 초등학교 앞 클린 하우스에 갔더니 이게 웬걸, 하루 중 배출 가능한 시간과 요일별 배출 가능한 품목이 지정되어 있었다.


버려야 할 재활용품의 종류도 많고 지금 당장 치워버리고 싶어서 재활용품 종류와 시간에 제한 없이 매일 버릴 수 있다는 '재활용 도움 센터'를 검색했다. 마침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가장 가까운 도움센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낯선 제주를 느꼈다.


자취, 독립 15년이 넘도록 분리수거만큼은 꽤나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곳의 분리수거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 플라스틱을 PS, PE HDPE LDPE, PP, 기타 이렇게 4종류로 분류하여 배출을 해야 했고, 알루미늄과 고철도 분리하여 수거하고 있었다. 종이류도 우유팩과 박스 그리고 책 종류는 일반 종이류와 따로 분리해야 했다. 


각각 학교 앞 클린하우스, 재활용품 배출 규정, 그리고 재활용 도움센터


인구수는 서울의 1/10도 안 되는 이곳에서도 이렇게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동안 플라스틱과 투명페트병을 분리수거하는 것도 귀찮아했던, 재활용품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재활용품들을 쓰레기 취급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재활용품은 엄연한 자원이었는데.. 이렇게 깨끗하게 수거되고 관리되고 있는 현장에서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는 일에 진심인지 느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면 다른 은행, 다른 금융권을 찾아가면 그만이지만, 지구에 진 빚은 그럴 수가 없다. 지구는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더 이상 인류에게 생태 자원을 빌려줄 수 없다면 남는 선택지는 종말뿐이다. -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두 번째 제주도는 없다 2


며칠 뒤 오랜만에 대형 프랜차이즈의 '사제커피'가 마시고 싶어 해안가 스타벅스를 찾아갔다. 특히 제주도에만 판매하는 스페셜 음료를 마시고 싶어 기대를 하고 갔는데, 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주도 스타벅스는 제주 전 지역이 에코매장으로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다. 테이크아웃을 하게 되면 개인 텀블러를 이용하거나 보증금 1,000원으로 리유저블 컵을 사서 사용하게 되는데, 사용 후에는 깨끗이 씻어 반납을 하면 보증금을 되돌려 받을 수도 있고, 원하면 가정에서 계속 사용할 수도 있단다. 반납은 매장 직원에게 갈 필요 없이 매장 내에 비치된 반납기에서 하면 되어 간단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뿐 아니라 작은 개인 카페까지도 거의 대부분이 일회용 컵 보증금을 받으며 조금이라도 일회용품을 줄여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제주에서 시작되는 것은 그만큼 제주 사람들이 환경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친환경을 표방하는 기업에 관해 그린위싱(green whashing, 위장환경주의, 실제와는 다르게 겉으로 친환경 경영을 표방하는 일)이라는 비판도 있고, 그린위싱과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린위싱이든 아니든 간에 환경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업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가식이라는 지적을 받더라도 애초에 환경에 필요한 시도를 한 그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두 번째 제주도는 없다 3


얼마 전에는 첫째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가는 길에 플로깅을 하는 단체를 만났다. 엄청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학교에서부터 큰 도로 쪽으로 길을 따라 내려오며 바닥의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해안가나 해수욕장, 오름 등의 산책길에서도 플로깅 하는 크고 작은 단체, 그리고 개인을 종종 볼 수 있다. 서울에서도 플로깅은 어느 정도 들어봤는데, 제주는 섬답게 '플로빙'이라는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 활동도 있었다.


제주도 플로깅, 플로빙 모집 포스터

 

이 작은 섬에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환경이 오염되고 있는 대세를 막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오염에 일조하지는 않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으로 적어도 이 섬의 환경만큼은 이 섬의 환경이 파괴되는 속도만큼은 조금 느리게 진행되도록 막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노력에 나도 힘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가 아름다운 이유는 육지와 떨어진 고립된 섬이라서가 아니었다. 나와 내 가족이 살고 있는 이 공간, 이 터전을 지키겠다는 도민의 간절함과 청정한 제주를 사랑하는 여행객들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연을 좋아하지만 자연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는 떳떳하게 말하지 못했다. 서울에 살면서 두 아이 모두 일회용 기저귀와 물티슈를 아낌없이 쓰면서 키웠고 배달음식도 많이 시켜 먹었다. 샴푸바, 설거지바, 천연수세미 등으로 바꾸어 한동안 써보기도 했지만 '역시 대기업 상품을 쓰는 이유가 있어' 라며 다시 기존에 쓰던 것들로 넘어오기도 했다. 예쁜 장바구니도 여러 개 있고 굴러다니는 텀블러도 많은데 왜 마트에 갈 때마다 카페에 갈 때마다 가지고 가는 것을 깜빡하는 걸까? 그동안 나는 환경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일이 많았고, 귀찮은 것보다 편리한 것을 좋아하는 어쩔 수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생각에 환경보호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외면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일만큼은 꼭 실천하면서 완벽하진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데, 고작 목소리 내길 주저하겠는가.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게 목소리를 못 낼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막상 지내다 보니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불편한 건 우리 가족이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이렇게 많은 플라스틱과 비닐이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매주 주말 아침이면 아이들과 함께 재활용품을 가지고 재활용 도움센터로 가지만, 조금씩 그 양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물을 무서워해 스노클링도 못하는 나라서 플로빙은 못하겠지만, 플로깅이나 환경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아이들과 함께 자주 참여해야지.


나도 제주의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진짜 제주도민이 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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