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이라는 벽돌을 차곡차곡 #1.

화려함만이 '챙김'은 아니라는 것

by 민트슈슈

혼자를 위한 밥을 차린지도 어느덧 2년이 훌쩍 지났다. '해놓은 걸로 좀 먹지 어떻게 매번 새로운 걸 먹으려고 하냐'라는 서운함 섞인 잔소리를 들을 일이 없으니,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주중에 잔뜩 저장해두었던 레시피 릴스를 뒤지며 만들 요리를 정하고, 필요한 재료를 비마트로 주문해놓고 들뜬 마음으로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는 일상을 보내곤 했다.


야채류들은 주로 페스토 행이 되었다. 견과류와 올리브유, 소금, 마늘을 함께 넣어 갈고 실리콘 틀에 넣어 얼려두면, 급할 때 파스타로도, 밥과 함께 볶으면 리소토로도 뚝딱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버섯류도 마찬가지였다. 2-3종류의 버섯을 한 번에 받는 날이면 가볍게 세척하고 올리브유에 달달 볶다가 소금 간하고 곱게 다져 소분하여 얼려두었다. 밥이나 면과 함께 볶으면 버섯 고유의 향이 더해져 감칠만 나는 요리를 만드는 데 좋았다. 야채의 색은 늘 기억보다 선명하고 화려해서 ‘어쩜 이렇게 예쁠까? 단단하고 향긋하기도 하네.’ 감탄하며 고명으로 올릴 용, 갈아서 페스토로 만들어 둘 용 등 용도를 분류해가며 정리해 놓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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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링귀니면에 깻잎 페스토, 올리브유, 발사믹 비네거, 소금을 비벼 낸 파스타. 꿀 한 티스푼에 버무린 방울토마토와 부라타 치즈를 추가하였다. 손으로 대충 찢어 둔 와일드 루꼴라와 함께 먹었다.
두번째. 선드라이 토마토를 재워두었던 올리브오일에 마늘, 홀페퍼론치노 넣고 노릇하게 튀기다 삶은 링귀니와 면수 부어 끓이고 토마토 1개를 으깨가며 익혔다. 생바질을 듬뿍 올려 먹었다.
세번째. 삶은 메밀면에 간장 두바퀴, 데친 냉이와 구운 방울양배추, 타이 바질 페스토에 졸인 두부를 얹어 비벼 먹었다.


만들기 쉽고 예쁘게 보이기도 하는 요리로는 단연 파스타가 최고다. 일반 파스타면 한 종류와 숏파스타 한 종류가 떨어지지 않게 늘 사두고, 짭쪼름하고 가벼운 면이 땡길때도 있으니 메밀면도 한 봉다리 사놓으면 소스와 고명만 바꾸어 가며 매일 매일 다른 음식을 해먹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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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구운 바게트 위에 구운 애호박과 계란 흰자를 얹었다. 통후추로 알싸함을 더했다.
오른쪽. 구운 바게트 위에 차즈키 소스를 듬뿍 올리고 연어 스테이크와 방울 토마토를 올렸다.


주말 일정을 마친 후 느지막한 오후에 노을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한갓지게 오픈 샌드위치를 먹는 재미를 안 이후부터는 냉동실에 치아바타나 바게트를 넉넉히 쟁여 놓는다. 커팅 하여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2-3조각 꺼내어 달궈진 프라이팬에 바싹 굽고, 으깨면서 구운 토마토와 스크램블 한 계란 흰자, 그리고 치즈나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 한 입 베어 물면, 스팀 청소기까지 돌려 뽀득뽀득한 거실 바닥과 조용하고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가 더해져 한 주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익숙해진 패턴에서 오는 지루함 때문이었는지,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력조차 없었던 날들의 연속이어서 그랬는지. 식탁 위에 외출 후 올려놓은 소지품들이 가득해지기 시작하면 언제 직접 밥을 해먹었냐는 듯, 설거지통도 바싹 마르기 시작한다. 끼니는 해결해야 하기에 냉장고를 열어보면 아직 씻어 놓지도 않은 야채들과 해동하는 데 몇 분은 걸리는 재료들이 반갑기보다 무정해 보여서, 그 서운함에 못 본척하다 펼쳐 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다른 걸 먹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에 배달 앱을 켜서 이리저리 둘러보았으나, 막상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어떤 ‘맛’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사실 그다지 대단한 것이 먹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퇴근하고 문을 열기도 전에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기대감을 주던 복도에서 나는 찌개 냄새나, 어느 주말 아침 잠결에 맡았던 것 같은 익숙한 반찬 냄새 같은 것들이 괜히 보고 싶어서 나는 심술 같은 것들이라는 것을 사실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문 열면 익숙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 가져 본 적 없는 어떤 존재들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뒤엉켰던 것 같기도 하다.


요리를 해먹을 기운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다시 플라스틱이 쌓이기 시작했다. 와중에 입맛은 높고 아무거나 먹긴 싫어서 이자카야에서 파는 타다끼나, 반찬 없이 단품만 보내주는 고기구이, 나름 여러 번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킨 김치찜의 흔적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같은 음식이어도 플라스틱에 담긴 채로 냉장고에 들어가 있으면 왜인지 내 몸에 죄를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원하던 데로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맛있고 배부르게 끼니를 해결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불편함이 자꾸만 커져갔다.


2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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