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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수 May 08. 2023

괴물 부모, 독이 든 사랑

괴물 부모, 독이 든 사랑      

 

괴물 부모라는 일본과 홍콩에서 유행했던 개념과 유사한 부모와 자녀들이 우리 나라에도 있습니다. 아마 전세계적으로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괴물 부모와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는 부모와 자녀들을 외래 진료에서 간혹 만나곤 합니다.

이 분들의 자녀들은 주로 우울을 호소하여 치료하거나 혹은 학교 폭력 아니면 특정한 범죄 후에 자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요청받고 상담을 하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 괴물 부모라 부를 수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다 찾아온 청년들을 만나고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아주 힘든 내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짧은 글은 이런 면담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의 고백입니다. 구체적 증례는 이 장에서 거의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괴물 부모라고 여겨질만한 관계 속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야기, 그리고 일본, 홍콩에서의 사례들, 마이클 아이건이 말한 독이 든 양분으로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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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부모의 종교가 되다      


마이클 아이건이 <독이 든 양분>이라는 책에서 한 말입니다. 아이가 종교가 되었을 때 부모 역할이란 거룩한 아이를 돌보고 숭배하는 것이 됩니다. 우상이 된 아이들은 기적을 행해야 합니다.

부모는 기적을 기다리는 삶을 살면서, 본인의 해결되지 않은 전능감까지 동원합니다. 부모들은 모든 것을 자녀라는 제단에 바치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의 아이를 누군가가 혹은 세상이 건드린다고 하는 것은 종교를, 제단을 농락하는 일로 여깁니다.      


괴물 부모      


일본에서 이런 병리적 과정과 현상에 대해 부른 이름이 ‘괴물 부모 (Monster Parents)’였습니다. 괴물 부모들은 신격화된 내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해야 하고, 또 내 아이만을 위해 다른 아이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종교인 아이를 잘 지키기 위해 때로는 더 강한 괴물 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사회도, 학교도 심지어는 같이 사는 배우자조차도 내 아이를 지켜주지 않기에 본인은 더 강력한 괴물이 되어야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괴물 부모의 출현에 대해 가타다 다마미 라는 정신과 의사는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식’이라는 저출산 사회의 영향과 ‘그 누구도 나와 연대해주지 않는다’는 무연사회의 고립감, 또 ‘세상은 힘있는 자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불공평 사회로부터의 결과라고 분석했던 바 있습니다.     


괴물 부모의 자녀들      


문제는 아이들입니다. 누군가의 종교로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할까? 아이는 부모라는 신도를 만족시키고 숭배에 대한 대가를 보여주기 위한 강요와 압박 속에 살아야 합니다.

그들의 삶은 겉과 속이 다르고, 집안과 집밖이 다릅니다. 점차 살아있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모든 것을 자신에게 바치면서, 최상과 멋진 결과를 독촉하는 부모들을 계속 보아야 하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종교적 의례의 기도문처럼 복창합니다. 내가 사는 이유는 ‘오직 자식 때문이고, 바로 너 때문에 산다고.

아이들은 자신의 욕망은 사라지고 부모의 욕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내가 사는 것 같지 않다고 합니다. 내 안에 누가 들어와 있는 삶을 산다고 말합니다.

이소베 우시오가 언급한 ‘모자 일체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죽으면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함께 죽는다고 합니다.

이 과대적이면서도 답답하고 부자유스런 삶은 고통 투성이입니다. 그래서 괴물 부모의 아이들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고통을 달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중독에 빠져들거나 혹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삶을 삽니다. 물론 일부 부모의 기대와 기도대로 겉으로는 성공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괴물 부모의 시스템 속에서 속에는 부모가 앉아있고 겉껍질로 살면서 마치 자신의 힘으로 성공한 것처럼 착각하고 지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언젠가 이들은 또다른 고통에 직면할 것입니다. 부모가 사라지거나 힘이 약해질 때의 고통은 이들의 큰 두려움 중 하나입니다.      


괴물 부모의 우상으로부터 탈출한 아이들      


부모라는 신도들을 물리치고 자신을 찾기 위한 시도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부모의 종교로서 사는 삶을 버리고, 괴물 부모가 강요하던 ‘대리적 삶’을 뛰쳐나온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삶의 가장 큰 상처가 된 것은 부모라고 아이들이라고 말합니다. 숨막히는 가족들의 삶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은 절대로 결혼도 하지 않을 것이며, 자녀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모든 강요된 삶으로부터, 누군가의 욕망에 포획되는 삶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사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삶은 해방감으로 넘치지 않고, 부모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원망 그리고 부모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복잡하고 불편합니다.

괴로움으로 가득 찬 아이들은 부모와의 힘들었던 삶을 통해  본인 자신이 부모라는 신도가 되는 것도 싫고, 자식이라는 대상을 갖지도 않고 싶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누구도 감당하지 않는 삶      


부모를 통해 자신의 삶에 깊이 타인이 침투하는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서 삶의 경계에 대한 이들의 고민은 깊습니다. 자신이 타인들에게 욕망을 가질 때 부모로부터 침투한 속성이 발현되는 것을 몇 번 경험하고는 두려움이 앞선다고 합니다.

타인에 대한 기대, 강요, 압박과 더불어 나도 수용하고 실천해야할 타인의 요구와 기대는 모두 불편하고 조절도 어렵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결혼은 물론이고 친밀한 관계 조차도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친밀함을 이루지 못한다고 비난하지만 본인은 누군가와 친밀하지 않은 삶, 누군가를 감당하지 않는 삶이 훨씬 안전하다고 느껴진다고 합니다.   

   

괴물 부모의 심리사회적 영향

– 불행한 아동기와 아이 혐오      


괴물 부모로부터 받은 아픔의 여파는 본질적으로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확산됩니다. 친밀한 관계의 종언이 괴물부모가 미친 자녀들에 대한 심리적 영향이고, 사회적 고립이 더 큰 차원의 영향입니다.  

괴물 부모, 혹은 그렇게 불리기는 억울하지만, 유사하게 부모의 대리 욕망체로 자녀를 여기거나, 시도 때도 없이 강요나 조종으로 자녀의 삶을 지배하려고 했던 부모들의 자식들은 모두 가족을 구성하지 않기 혹은 구성할 수 없음 그리고 자녀를 갖지 않기, 자신과 비슷한 삶을 조금이라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마치 가해자와의 동일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등이 마음의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저출생’ 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담론은 미시적으로는 ‘아이 갖기 힘듬’ 그리고 ‘아이 갖기 혐오’ 입니다. 아이를 갖는 것이 행복하지도 않고,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과정이 어렵고, 아이는 삶의 큰 과제이자 숙제일 뿐이라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마음의 근저에는 본인 자신이 겪었던 아이 시절에 행복이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없는 사회가 괴물 부모의 지대한 사회적 영향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괴물 부모도 억울하다      


괴물 부모 자신들은 미안해할 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 탓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시대가 요구한 훌륭한 부모되기의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자녀를 소중히 여기고 성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합니다. 괴물 부모 현상과 연관된 부모들과의 인터뷰를 정리해보면 다음의 6가지 이유를 들을 수 있습니다.      

첫째, 경쟁 사회에서의 강한 생존을 돕기 위함이였고,

둘째, 삶에서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의미있는 일이였고,

셋째, 훌륭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함이였고,

넷째, 아무도 자신과 자녀의 어려움을 도와주지 않았으며 그래서 스스로 강해져야한다고 생각했으며,

다섯째,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들을 갖게 해주고 싶어서였고, 여섯째, 하나 밖에 없거나 유일한 경험들 속에서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경쟁을 위한 생존, 저출생, 삶의 의미, 유일성 등이 현재 우리 시대의 부모들을 괴물 부모화 하는 요소들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식은 하나 밖에 없거나, 남자 아이로는 유일하거나 여자 아이로는 유일한 자녀들을 우상숭배시 하는 풍조는 이미 시작된 저출생의 영향도 큽니다.

고학력 사회가 되면서 부모들의 요구도 커지고, 부모 자신의 지불 능력도 높아지고, 부모 자신의 욕망이 비대해진 영향도 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경쟁이 극심한 것, 특히 교육에서의 경쟁이 극심해서 ‘공부 잘하는 아이’에 대한 출혈성 소모를 많이 하는 사회의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벌 사회에 대한 무수한 사회적, 비판적 담론이 있었지만, 그 힘은 학벌의 성을 무너뜨리지 못한 상태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그 현상은 더 악화되어, 사회는 특정 대학, 특정 직업이 움직이는 조악한 사회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여전히 그 지배력은 엄청나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합니다. 특정 지역의 특정 부족화 현상 (대치동 엄마, 목동 엄마 등) 까지 사회현상으로 연구되고 있지만 이 입시 경쟁의 틀을 깰 힘을 우리는 아직 갖지 못했습니다.

좋은 대학 보낸 부모가 가장 훌륭한 부모처럼 취급되어 ‘공신 부모’들의 서적은 언제나 베스트 셀러였습니다. 자녀를 모두 명문대 보낸 부모들은 책 한권 쓸 것 같은 기세로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괴물 부모의 탄생은 돌연변이로서의 개별적 탄생이 아니라 경쟁 (격차), 저출생, 학벌, 부모상의 왜곡이라는 퍼즐이 만들어낸 집단적 탄생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괴물 부모의 가족 특징 1 - 남편 없는 아내, 아내 없는 남편의 사회      


우리 문화에서 부모는 자녀를 제일 중시하고, 부부관계는 흔히 뒷전이 됩니다. 엄마들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빠들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처자식 때문에 산다고 합니다.

상당히 많은 부부들은 자식을 내세우면서 자식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많은 가정들은 부부의 사랑에 기초한 자녀와의 관계가 아니라 부모-자녀의 사랑에 복무하는 부부의 협력적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혼의 위기에서도 결혼이 유지되는 힘은 자녀입니다. 자녀는 부부의 접착제입니다. 자녀가 없으면 유지되지 않을 부부관계는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조사해서 알려고하지 않을 뿐입니다.  

황혼 이혼이 늘어나거나 졸혼이라는 일본의 문화는 이런 현상에 근거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자녀가 장성해서 부모의 책임이 줄어들고, 이혼의 영향이 크지 않을 상태에 부부 협력의 목적이 해체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본말이 전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합니다. 결혼하는 이유가 배우자 보다는 자녀를 얻고, 자녀와 살기 위함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고 합니다.

남편은 있지만 그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들이 많고, 아내는 있지만 그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도 많습니다. 그런데 모두 그 부부가 자녀는 너무도 사랑합니다. 또는 사랑한다고 합니다.

자녀 속에 있는 자신의 일면을 사랑하지만 자녀 속에 있는 배우자의 측면은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배우자를 비난만 하지 않아도 매우 인격적인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부부 관계를 보면서 자라나는 자녀가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서로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사랑한다는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은 혼란과 분열 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통합이 쉽지가 않습니다. 몸을 반으로 쪼개서 한쪽은 엄마를 주고, 한쪽은 아빠를 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아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특히 충성심에 대한 갈등은 사춘기에 아주 고조를 이루고 아이들 마음에 큰 고통으로 남습니다. 딜레마 상태에 있느니 다소의 죄책감을 안고 한쪽을 정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는 아이들이 꽤 많습니다. 물론 그 한 쪽은 대부분 엄마입니다. 반면 끝까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다가 가족 관계 자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괴물 부모의 가족 특징 2 - 모계 가족      


그래서 괴물 부모의 가족들은 압도적으로 모계 가족이 많습니다. 엄마가 실제로 모든 것을 기획하고 통제하는데, 겉으로는 아버지가 대장인 것처럼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바쁘고 밖으로 돌고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배정받은 것으로 흔히 표현되곤 합니다. 아버지의 삶에서도 자녀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고 친밀함에 대한 아머지들의 욕구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와 아버지의 밀착은 사회적으로 썩 바람직한 영향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유행하는 유머인지, 진담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언급 중에 아버지는 간섭하지 않은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자녀의 입시에 더 도움이 된다는 ‘엄마의 정보력, 조부모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이라는 말은 한국사회에  회자된지 오래입니다.

모계 가정에서 엄마는 남편을 지휘하고 자녀를 통제하며 가정에서 많은 것을 감당합니다. 특히 엄마와 자녀들의 관계는 아주 특별합니다.

엄마와 자녀는 더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엄마의 삶은 자녀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엄마들은 자신의 삶보다 자녀의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모든 것을 걸고, 죽도록 희생하고, 목숨을 건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마치 엄마는 ‘없는’ 존재처럼 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늘 영혼을 다 갈아넣은 엄마는 자신이 사라진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자녀와 일체화된 존재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 속에 엄마가 들어가 있는 공생적 일체화 상태의 존재들이 즐비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엄마를 의식하고, 엄마가 지켜본다는 느낌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 합니다.

괴물 부모의 자녀가 성장 후에도 겪는 고통 중 하나는 그들 내면에 부모의 시선 혹은 부모의 영혼, 혹은 부모의 몸이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부착된 부모를 떼어내는 과정이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떼어내는 과정에서 부모만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애의 많은 것들도 함께 붕괴된다고 합니다.      


가정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상처가 남긴 깊은 우울


괴물 부모의 가족은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최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가 희생되는 시스템인데, 아버지는 자녀의 학업과 가족의 부동산을 감당하는 경제적 축을 이루고, 어머니는 총괄하며, 자녀는 엄마를 실현하는 실행체입니다. 이 희생 시스템의 작동에 문제가 생기면서 여러 갈등과 투쟁, 병적 관계의 악화와 확장, 상처들이 남곤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상처는 가정과 사랑 이라는 이름하에서 이루어지는 상처들입니다. 기대, 억압, 강요, 경쟁, 지배, 실망, 증오, 원망, 포기, 자해, 자살 사고, 불행이 가족과 사랑이라는 이름과 모두 짝을 이루는 것으로 경험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대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강요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참고, 사랑하기 때문에 경쟁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실망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죽어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뒤섞임은 지속적인 딜레마를 만듭니다.

괴물 부모의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사랑의 정체와 속성을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사랑이 따뜻하지가 않다. 사랑이 조건 가득이다. 사랑할수록 죽고 싶어진다.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포기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면 할수록 할 일이 많아진다.’ 이런 것이 사랑인가? 라고 사랑에 대해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배운을 사랑을 가지고 타인들에게 접근하면 타인들은 상처받고 떠나버립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비난과 함께 거부당하거나 혹은 조건부 사랑, 뇌물에 기초한 무늬만 사랑인 사랑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받기도 어려운 마음의 상태, 계속 되는 딜레마에 빠지고, 딜레마 상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마음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또 쭈그러지고, 멍들고, 휘어지면서 불안하고 힘들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붕괴되고 그 결과는 불안과 우울 속에 지내는 것입니다.   

견디기 힘든 우울을 달래지 못할 때가 문제입니다. 그럴 때 타인을 괴롭히거나 중독에 빠지거나 혹은 반사회적 행동을 통해 타인과 접착하려고 노력해봅니다. 하지만 괴물 부모의 자녀들은 공허함을 달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내면에서는 제대로 세워보지 못했지만 겉은 삐까번쩍 하는 외양을 지닌 채로 지내오면서 만들어진 간극을 메우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부모를 빼면 허무해지고, 부모를 채워넣으면 허수아비가 되어야 합니다. 허수아비 삶을 적어도 15년에서 20년 혹은 더 이상을 살아왔는데, 자신의 삶을 다시 불러내어 살기란 재탄생과 비슷한 과정인데, 누가 이 재탄생 이후 돌보아줄까요? 그래서 결혼해서도 부모와의 공생관계가 지속되는 현상은 최근 더 커지고 있고, 결혼을 하지 못하고 부모와 공생이 계속 길어지는 괴물 부모와 그 자녀 관계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독이 든 사랑이 넘치는 시대       


독이 든 사랑 속에서 병든 부모-자녀 관계가 넘쳐나고 있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그리고 여러 학원과 소년, 소녀들의 클럽에서 이 독배의 사랑을 나누는 부모 자녀들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저출생, 초경쟁, 초격차, 학벌, 부동산의 문제가 독배를 마셔야하는 사랑을 탄생시켰다고 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병든 사랑의 관계에 빠져들어가는 이상한 가족들을 더 많이 만날 것입니다.

혐오와 차별은 확대되고, 사회는 양극화에 따른 구획화 (부자와 빈곤층이 지역적으로도 완전히 나누어져서 사는 현상)가 확장되고, 관계의 상처로 인한 병적 착취와 학대도 증가할 것입니다. 희망을 찾으려면 우리 사회의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런지도 모릅니다.  

괴물 부모의 독이 든 사랑을 멈추게 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경쟁과 격차, 혐오와 차별이 줄어들고 사랑과 평화, 평등과 협력이 넘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괴물들이 이를 가로 막고 있습니다. 알고 가로막고 있고, 또 모르고 가로막고 있는데, 이 벽을 뛰어 넘는 우리 사회의 실천과 제안이 조금 더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출판 준비 중인 책의 일부 - 괴물 부모, 독이 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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