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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수 Apr 15. 2018

부모의 환상화는 아픈 자녀에게 흔하다*

2018.4.14 어제 꺼낸 책에서의 한 문장

* 아직도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 50쪽, 찰스 쉘


상당히 오랜 기간 과거의 상처를 잊고 지내다가, 다시 본인의 인생고비에서 우울증을 만난 A.

그의 인생은 정말 힘든 인생이었지만, 그 힘듦을 모르는 것은 그 자신이었다.

그는 그의 부모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성숙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모를 더 보기좋게 포장하여, '그럴 리 없다'라는생각으로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부모를 미워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성공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투여했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힘들고 허무하고 공허한 느낌이 찾아와서 괴로워했다. 그러면서 미안해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더 멋지게 자신의 역경을 이겨내지 못한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기도 했다.


상처주는 부모를 둔 자녀의 방어기제는 있는 그대로의 부모를 받아들일 수 없어, 부모를 '환상화'하고, 그' 환상화'한 부모에게 사랑을 바치고, 인정받으려 한다. 또 자신안의 전능감을 되살려, 역경을 이겨내서, 부모를 구해내고, 자신도 구제 받으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부모도, 그런 내 자신도 없으므로 현실에서의 부모나 나 자신과 감정적으로 친숙해져서는 안된다.

즉 '친밀감'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운명을 지켜내야만 이 '환상화'는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일에만 빠져야 한다. 돈에만 빠져야 한다. 친밀감과 거리를 두는, 인생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가까운 관계를 최대한 피해서 지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은 여러 어려움이 우리를 덮치기에, 이 유약한 시스템은 결국 언젠가 파괴되고, '나쁜 부모-사랑받지 못했던 나' 이 패러다임이 직면될 때, 우리는 방황하게 된다.


위니캇은 이 절망을 넘어야 한다고 했다. 이 절망 너머에 진실이 있다. 언젠가 사랑받기도 했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은 그렇다.


'나는 언젠가부터 사랑받지 못했다

우리를 두고 부모는 어느날 사라졌다

나는 이전보다 잘하지 못했다

그 후로 우리 형제는 짐짝이었다

언젠가부터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았다'


이 절망을 가져다주는 문구가 우리들 가슴 속에 있었다.


이 절망과 함께, 환멸을 느껴야, 성장한다고 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다시 또다른 소설을 쓰고 가짜 자기로 살면, 우울 속에서 한평생을 자학만 하고 살 것이다. 병적인 방식의 자기위로와 연민에 빠져 일, 술, 여자, 분노 등에 빠져살 것이다.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는 진실을 피해 연기를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사랑받지 못했다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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