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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은 Dec 20. 2019

영국맘들의 수다방

런던&아이

또다시 시작이다,

밤새 칭얼거리던 딸아이와 싸우고 또 전장의 장수처럼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다시 육아라는 전쟁터에 들어선다. 하루만이라도 이 전장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육아는 후퇴도 패배도 허락하지 않는다. 무조건 전진이다. 적이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아도 포기는 없다.


아이는 평소 플레이 그룹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그런데 오늘은 선뜻 나선다. 놀이방에 갈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플레이 그룹과 놀이방이 같은 맥락이라는 걸 모르는 아이는 아무래도 한국에서 갔던 뽀로로 카페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낮이 짧아져서 활동 양이 줄어든 아이는 매일 밤 자다 일어나길 반복한다. 처음엔 시차 적응 중이려니 했으나 점점 이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억지로 아이를 이끌고 길을 나선다.


영국은 유치원에 가기 전에 엄마들과 아이들이 함께 가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 하나가 교회에서 운영하는 플레이 그룹이다. 영국 내에 있는 교회들은 평일에 요일을 정해서 플레이 그룹이라는 것을 운영한다. 플레이 그룹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과 장난감, 더러는 체험 같은 것들을 제공한다. 낡고 손때 뭍은 장난감에 더러운 카펫 위를 맨발로, 신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자면 당장이라도 내 아이는 이런 곳에 둘 수 없다며 소리치며 끌고 나오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가보면 이 매력에 빠져나올 수 없다. 아이는 친구를 만들고 엄마는 육아라는 공통의 관심을 가진 동지를 만난다. 육아라는 패배감 밖에 느껴지지 않는 전장 속에서 내 아이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과 엄마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이들의 위로를 받고 있으면 나조차도 마음의 여유와 괜한 넉넉함이 생긴다. 한국 돈으로 이 천 원 정도면 아이의 간식과 내 커피까지 해결되는데 뭐가 문제일까 싶다.

'그래, 더러우면 어떠냐, 집에 갈 때 손 씻고 가면 돼,  흙 묻은 옷은 빨면 되지, 뭐.'


플레이 그룹의 하이라이트는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부르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모이면 맨 마지막은 노래를 부른다.  선생님을 따라 아이들과 엄마들이 흥겹게 같이 부른다.

주로 Head Soudlders, knees and Toes, Old MacDonald had a Farm, Incy Wincy spider, Row your boat, Twinkle, twinkle, litte star, The Bus 등을 부른다. 대부분 이 노래를 벗어나지 않아 불러서 영어 못하는 나는 아이와 자주 듣고 연습까지 하고 가서 부르고 온다. 집에서 연습을 마친 아이는 자신감에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나가 춤을 추기까지 한다. 신이나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또다시 미안함이 감돈다.


 스스로에게 늘 육아에 있어서는 이게 나의 최선이라고, 최선을 다해왔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부족하고 서툰 엄마를 만나서 고생하는 것도 그렇고, 조금  더 준비된 엄마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어서이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만 어두워도 마음 한편이 시리다. 엄마가 항상 내 앞에 서면 전전긍긍하고 미안해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살포시 엄마의 마음이 들여다 보인다. 다 주어도 늘 미안한 마음, 그게 자식을 향한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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