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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은 Dec 01. 2019

키즈 쇼핑카트

런던&아이

11월 말의 영국은 부슬부슬 비도 많이 내리고 날씨도 우중충한 게 우울함이 밀려온다.

청명했던 여름날의 하늘은 어느새 검게 물들고 오후 3시만 되면 깜깜한 어둠이 지속된다.

3주 동안 한국을 방문하고 영국으로 돌아와 밀린 빨래에 청소들을 하고 나니 새삼 한국을 떠나 다시 영국 생활이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시차 적응으로 딸아이는 아침까지 늦잠이라,

대충 토스트로 아침을 때우고 나니 친정엄마의 손길이 닿은 김치로 가득 채워진 냉장고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다. 한국에서는 밖에 나가 먹일 것들이 널려있었는데, 영국은 24개월 아이가 밖에서 사 먹을 만한 게 별로 없다.

오전 10시가 돼서야, 아이가 눈을 뜬다.

"할미 어디 있어? 할미 보고 싶어!"

한동안은 아이도 나도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의 시간들을 보내야 할 거 같다.  아이에게도 대충 우유와 빵 한 조각을 쥐어주고 밖으로 나간다. 빵으로 배가 채워진 아이는 놀이터에 가자고 칭얼거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인지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다. 날 좋은 날에 영국 아이들은 공원이나 놀이터에 많이 나와 논다.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며 수다에 빠진다.

한국 아이들은 엄마들의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돌이 지나면 어린이집을 간다고 하는데 영국에서 만 3세가 돼서야 정부 지원금으로 어린이집에 갈 수 있다. 뭐 돈이 많다면 사비로 어린이집을 갈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국 엄마들은 워킹맘보다는 아이가 자라는 만 3세까지 육아에만 전념하는 편이다. 밖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것이 그대로 아이의 어린이집 비로 나가기 때문이다.

아이도 친구 없는 놀이터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집에 가자고 조른다. 유모차를 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의 손을  잡고 리들로 향한다.


리들(LiDL)은 독일에서 들어온 영국에 있는 마트 중 하나인데  과일도 그렇고 채소 등 질 좋은 고기도 다른 마트에 비해 저렴하다.

엇! 못 보던 게 생겼다.

키즈 카트! 유아용 장난감 카트를 사서 집에서 아이와 같이 놀아준 적이 있어서 인지 너무 반가웠다. 한국에서 아이가 마트를 밀고 다니게 하면 맘충이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지만 영국은 아이들에게 다른 친구들에 대한 배려와 친절을 가르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선에선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는 편인 것 같다.

마트에 아이들이 밀고 다닐 카트까지 만들어 놓다니, 역시 아이들을 사랑하는 나라답다.

영국은 한국보다 아이에 대해서 호의적인 편이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다 보면 계단이나, 기차를 이용할 때면 돕는 손이 필요할 때가 많은데 어느 곳이든 누구든 도와준다. 안 도와주는 사람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처음에 낯선 이를 돕는 이들이 이상하게 느껴져 피하곤 했는데. 영국 특유의 매너와 친절이 몸에 배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그들의 친절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트에 오면 유모차에서 내리고 싶다고 칭얼거리기 일쑤였는데 아이도 자신이 밀 수 있는 카트가 생겨서 신이 났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조차도 아이가 마트를 밀고 다니는 것에 번거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아이가 제 몸집에 맞는 카트를 밀고 다니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하게 여긴다.

아이는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에 힘을 얻어 최대한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엄마가 필요한 목록들을 듣고 카트에 싣는다.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책임감과 뿌듯함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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