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텀이 시작되고 할 일 없는 우리 모녀는 동네 한 바퀴나 돌아볼 생각으로 밖으로 나갔다.
"마트 갈까?"
"아니, 맥도널드 갈 거야!"
"마트 가면 요구르트도 살 수 있어!"
"아니야, 맥도!"
아이의 태도가 단호했다. 이럴 땐 그냥 가는 게 맞다. 괜한 실랑이는 아이와 나를 길거리 한복판에서 험한 꼴을 보게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또 맥도널드로 가게 되었다.
아이는 맥도널드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걸 좋아한다. 주말이면 나는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맥도널드에 간다. 영국에 비싼 외식 물가에 그나마 저렴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사용되는 재료들 소고기와 감자, 토마토 등이 영국 현지의 청정지역의 것들을 사용한다는 광고를 본 뒤론 더 자주 이용하게 된 거 같다.
맥도널드 안은 이미 인산인해다. 하프 텀으로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지 않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영국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영국은 하프 텀이 자주 찾아온다. 그래서인지 영국에서는 일하는 엄마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유모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아이들 앞에는 해피밀이 하나씩 놓여있다. 영국에 와서 조금 놀란 건 한국에 엄마들은 어떻게 서든 인스턴트나 기름진 음식, 혹은 도넛같이 설탕이 잔뜩 뭍은 음식들을 주지 않는데, 여기선 6개월 된 아이도 머핀을 먹는다는 거다. 그래서 처음 영국에 왔을 땐 엄마들이 점심시간에 맥도널드에 와서 아이들에게 기름에 튀긴 감자와 햄버거를 사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피밀 세트
그러나 영국에 산지 이제 2년이 다돼가는 나는 자연스럽게 해피밀과 덤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까지 주문했다. 이것이 그들의 문화(?)를 경험하게 해주는 뜻깊은 엄마의 마음이라 살짝 위로하며 말이다.
'흐흐 오늘도 한 끼 때웠다!'
아이는 해피밀을 보고 신이 났다. 아이가 먹기 좋게 잘라 입안에 넣어주었다. 아이가 입을 한참을 오물거리고 있는 사이, 주변에 있는 엄마들에게 시선이 갔다.
'먹여주는 엄마는 나 밖에 없구나!'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언제까지 아이의 입속에 음식물을 넣어주는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그런데도 입이 짧은 아이가 안 먹을까 봐 걱정돼, 나도 모르게 자꾸 아이 입속으로 넣어주게 된다.
"자, 이젠 너 혼자 먹어."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더니 감자튀김 하나를 집어 먹는다. 그 이후로도 아이는 혼자서 열심히 집어 먹었다.
'할 수 있는 데 엄마가 또 마음이 급했구나!'
그냥 기다려주면 되는 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나였다는 사실을 또 깨닫는다. 영국에 와서 신발을 신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엄마들을 자주 보았다. 늘 바쁘고 마음 급한 나는 아이의 옷도 신발도 내가 해버리고 만다.
내 속도가 아니라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 알면서도 왜 그게 그렇게 어려운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