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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Dec 23. 2024

인도의 하이엔드 위스키 폴존 증류소 투어

한바탕의 소동이 지나간 뒤 우리는 20대로 보이는 여성 직원의 가이드에 따라 이동했다. 마침내 사진으로만 봤던 증류소의 상징인 황동 증류기 여러 대가 눈앞에 짜잔 하고 나타났다. “아, 이거 보려고 아침부터 서둘러 여기에 온 건데,…” 거대한 나팔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모양새로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관이 천장을 향해 올라가 수직 기둥이 있는 곳으로 꺾여 술을 증류하고 있었다. 이 장관이 신기했지만 살짝 씁쓸한 마음이 같이 들었다. 여행사가 너무나 괘씸했다. 하지만 일단은 여기에 온 것 자체가 귀한 경험이니 온전히 즐기고 이후에 우리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리뷰를 남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직원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세 명은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들은 뒤 피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피티드 위스키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도대체 이놈의 피트가 뭔가 했는데 여기서 그 실물을 처음 봤다. 새까만 흙덩어리 같은 걸 손에 쥐어 이 쿰쿰한 냄새를 맡고 있자니 왜 피티드 위스키에서 지푸라기 탄 내가 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차이를 더 자세히 느끼기 위해 피티드와 언피티드된 맥아를 둘 다 먹어봤는데 확실히 피티드에서 훈연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순간 아주 오래전에 맛보고 이걸 왜 먹지 했던 탈리스커 위스키의 향이 연기처럼 스쳐갔다. 피트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 술 이후로 피티드 써있으면 거르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우린 역시 피트는 안 맞다 얘기하며 입안에 남아있는 맥아를 잘근잘근 씹으며 직원을 따라갔다. 발효가 진행되고 있는 술을 보여줬는데 하얀 거품이 두꺼운 솜처럼 몽글몽글하게 올라와 있는 게 딱 맥주 같았다. 도수도 7-8도 정도 되는 상태라고 했다. 직원은 우리에게 잠시 발효의 냄새를 경험하게 해주겠다며 작은 점검창을 살짝 열어줬다. 호기심에 코를 냅다 들이댔는데 누가 암모니아 스프레이를 콧구멍에 직빵으로 쏜 것 같은 강한 향과 가스가 느껴졌다. 우악! 하며 들이마신 가스는 몸에서 바로 거부 반응으로 강렬한 기침을 일으켜 밀어냈다.


발효와 증류


이 맥주 같은 상태의 술을 거대한 황동 증류기로 열을 가해 1차 증류를 시키면 알코올 도수가 20도 정도 되는 술이 되고 이걸 다시 2차 증류를 시켜 60도 정도의 고도수 술을 만든다고 했다. 두 가지 색을 비교해 봐도 1차는 희뿌연하게 탁하고 2차 증류가 된 건 생수처럼 투명했다. 여기서 우리가 아는 황금빛의 위스키로 단장을 하려면 오크통에서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보기 위해 건물 지하에 있던 숙성 창고로 내려갔다. 깜깜한 동굴 같은 지하 창고로 들어오니 지상보다 서늘하고 습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초록색 조명에 반사된 셀 수 없이 수많은 오크통들은 선반에 차곡차곡 쌓여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각 캐스크에는 원래 뭘 담았던 통인지를 알려주는 글씨들이 크게 적혀 있었는데 버번, 셰리, 마데이라, 빈티지 포트, 와인, 럼 등등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해서 놀라웠다. 폴존만의 고유한 맛과 향을 내기 위해 많은 방법을 찾고 있구나 싶었다.



직원의 말로는 인도 위스키의 숙성 기간이 스카치위스키에 비하면 1/2 혹은 1/3이 될 정도로 훨씬 짧은데 그 이유는 연중 내내 더운 날씨로 숙성이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엔젤스 셰어(증발량)도 유럽보다 훨씬 높은 편이기도 하고 빠른 숙성을 관리하는 일은 까다롭지만 이로 인해 독특한 향과 맛이 생기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날씨의 영향이 술의 맛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고 느낀 게 인도의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특유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나라의 더운 지역에서 난 것들보다도 뭔가 맛이 더 진하고 농후한 그리고 그 뒤에 나는 약간 쿰쿰한 향이 있었다. 처음엔 이 향이 익숙지 않아서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바나 레스토랑에서 인도 음식들과 먹으니 궁합이 좋았다. 역시 최고의 페어링은 그 술이 만들어진 곳의 음식과 같이 먹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이었다.


대략 오십분 정도 투어를 하니 드디어 고대했던 테이스팅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세 명은 바 좌석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앞에 놓여있는 글랜케런 잔들이 채워지길 기다렸다. 우리의 투어를 진행했던 직원이 여섯 종류의 위스키를 꺼내더니 하나씩 맛볼 수 있도록 조금씩 따라주었다.



한 잔 따라줄 때마다 맛보는 위스키에 대한 설명을 디테일하게 해줬는데 이 직원 술에 대한 지식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 너무 어려 보여서 트레이닝을 받고 안내 정도 해주겠지 했는데 숙성 창고에 갔을 때부터 독일인 아저씨와 심도 있는 티키타카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해박함에 감탄한 우리는 직원의 이력을 물었는데 주류 회사들에서 꾸준히 근무를 하면서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술에 진심이었다. 알고 보니 독일 해군이라는 아저씨도 완전 위스키 덕후였는데 이미 십 년 전에 독일에서 폴존 위스키의 맛을 봤고 고아에 온 김에 들렀다고 했다.


“잠깐! 폴존 위스키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브랜드로 알고 있었는데 이미 십 년 전에 유럽 시장에 수출을 했었다고?” 궁금해하며 물었더니 폴존은 인도 내에서 보단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진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해외 품평회에서 좋은 평을 받고 어워드도 많이 수상한 뒤 인정을 받아, 정통 위스키에 익숙한 유럽 마켓에서도 가성비가 좋은 위스키로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저렴한 가향 위스키 시장이 더 큰 인도에선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아 과거에는 수출 물량이 내수보다 훨씬 더 많았는데 지금은 내수도 높아져 거의 반반이라고 말하면서 더 많은 인도 사람들이 진짜 위스키의 진가를 더 알아줬으면 한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테이스팅으로 제공된 여섯 종류의 위스키는 전부다 싱글 몰트였고 향이며 맛이며 정말 훌륭했다. 같은 브랜드의 제품이었지만 내가 산 가장 저가 라인의 것들과는 너무 수준 차가 났다. 이래서 사람들이 좋아했구나 바로 이해가 갔다. 특히 언피티드 위스키들의 향은 바닐라, 토피, 건과일 같은 향들이 어찌나 풍부하게 나던지! 개인적으로 와인과 꼬냑을 더 좋아해서 위스키를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 증류소 투어가 내 술의 영역을 넓혀준 것 같았다.


와 정말 맛있다! 감탄하면서 아주 조금씩 천천히 음미를 했다. 나는 거의 빈속에 위스키를 들이붓는 건 위험하겠다 싶어 여섯 종류의 위스키들을 비교하는 정도로만 한두 모금씩만 마셨는데 양옆의 남성분들은 신이 나셨는지 모든 술잔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비워냈다. 사실 이 테이스팅 전에도 지하 창고에서도 50도 정도 되는 몇 잔의 술을 테이스팅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맛있다며 잔들을 다 비워낸 남편이었다. 걱정이 되어 쳐다보니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이미 그의 눈은 충혈되었다.


모든 투어가 끝난 뒤 입구에 있던 기념품 샵으로 갔다. 우리 지역에선 살 수 없었던 위스키들이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어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두 병 정도 구매할 생각을 하고 고르던 중 직원은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았고 그녀는 너희가 사는 지역으로는 9병까지 들고 갈 수 있다고 알려줬다. 순간 둘 다 눈이 희번덕 빛났다. 그럼 친정집, 시댁, 친구들 것까지 깡그리 사들고 갈까 하며 열띤 토론이 오고 갔는데 역시나 먼저 냉정을 찾은 남편은 워워 하며 나를 가라앉혔다. 우리가 한국에 언제 다시 간다는 기약도 없고 캐리어 안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다며 우리가 정말 먹고 싶은 것만 사는 게 현명한 것 같다며 3병으로 합의를 봤다.  


결국 테이스팅 한 것 중 가장 좋았던 언피티드로 두 가지 그리고 직원이 강추해 준 피티드를 하나 더 사기로 했다. 사실 피티드에 대한 기억이 별로여서 굳이?라고 생각했다가 오늘 테이스팅 했던 피티드 위스키의 향이 너무 세지 않고 오히려 세련됐다고 느낀 정도여서 생각보다 괜찮았었기 때문이다. 위스키 세 병과 폴존 로고가 있는 위스키 글래스 2개를 사서 증류소를 나오는데 그렇게 발걸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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