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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Dec 20. 2024

인도의 위스키 그리고 호구된 썰

전 세계에서 위스키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바로 인도이다. 술을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에서 전 세계 소비량 1위는 과연 아이러니하면서 놀라운 결과다. 물론 인구가 워낙 많고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니 위스키가 오래전부터 보급이 되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인도에 와서 가구를 보러 다닐 때 독특하다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게 홈바 전용 캐비닛이었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화려하게 짜인 캐비닛은 술과 잔들 집기들을 넣을 수 있게 되었는데 사이즈가 장롱만한 것들이어서 누가 봐도 부잣집에서 과시용으로 쓰는 가구구나 싶었다. 인테리어 샵을 가도 유럽 식당에서 쓸법한 바 트롤리들도 팔고 칵테일 믹서 세트들은 너무 흔했다. “인도 생각보다 너무 술에 진심인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리큐어 샵에 가도 인도산 위스키들은 큰 벽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종류가 많고 게다가 말도 안되게 저렴하다. 인도는 자국 내 산업 보호 목적으로 수입 주류에 대한 관세가 아주 비싼 나라라 수입 위스키를 사러 갔다가도 인도 위스키의 가격을 보면 눈이 휙휙 돌아간다. 한 편으론 위스키는 만들기가 워낙 까다롭고 오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위스키 브랜드가 만들어졌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많은 메이드 인 인디아 위스키 브랜드들이 다 제대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이 중 대부분이 고급 위스키들을 흉내 낸 가향 위스키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맥아가 아닌 사탕수수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럼에 위스키를 섞어 만든 것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위스키에 대한 선호가 높기 때문에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결국 인도는 제대로 된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젠 세계적인 시장에 내놓을 수준의 브랜드들이 생겼다.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고퀄리티의 위스키를 뽑으라면 단연 암루트(Amrut)와 폴존(Paul John)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났는지 새벽부터 오픈런으로 줄을 서서 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여기 살고 계신 한국인분들도 한국에 갈 때 이 위스키 브랜드들을 꼭 사가신다는 말을 듣고 남편과 나는 도대체 무슨 맛이길래 그렇게 열광을 하나 궁금해졌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어떤 술인지 한 번 알아보고 기삿거리들로 이런저런 평들도 찾아봤더니 너무 제대로 된 위스키를 만들고 있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술쟁이인 우리 부부는 바로 행동을 개시해 주말에 유명한 리큐어 샵으로 향했다. 근데 너무 실망스럽게도 내가 찾았던 싱글 몰트나 숙성 기간이 좀 오래된 위스키들은 아예 안 들어온다며 저가 라인 한 종류만 있다고 안내를 받았다. 아쉬운 마음 한가득이었지만 결국 맛이라도 보자 해서 한 병을 사가지고 왔다.


우린 집에 사들고 온 위스키들의 맛을 보기 위해 비교 테이스팅을 했다. 집에 있던 발베니와 글렌피딕을 조금씩 따라서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시음을 했는데 아무리 맛을 봐도 처음 맛본 인도 위스키의 향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스카치 위스키에 비해 인도 위스키의 향은 더운 날씨에서 숙성된 특유의 향인 것 같았는데 과하게 젖은 오크와, 낙엽, 카라멜같은 향이 났기 때문이다. 사실 난 위스키 맛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닌데 차라리 비교 시음을 하지 않고 그냥 먹었더라면 괜찮다 했을 것 같았다. 아쉽지만 나의 인도 위스키 첫 경험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이후로도 다른 종류로 두 병 정도를 더 구해서 마셔봤지만 우와!할 정도의 큰 임팩트는 없었다. 더 고가 라인의 제품을 찾아야겠다는 갈망에 목말랐다.


그러다 몇 달 전쯤 고아 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 리서치를 하다가 폴존의 증류소가 고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대박이라며 남편에게 얘기를 했고 같이 흥분한 남편은 무조건 간다며 예약을 하라 했다. 난 바로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프로그램을 등록하려 했지만 아무리 봐도 투어나 결제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구글로 투어 프로그램을 검색하니 몇 가지 결과가 보였고 이 중 고민하다 트립 어드바이저 사이트에 있는 프라이빗 투어를 예약했다. 둘이 합쳐 14만원 정도 되는 가격이었지만 택시로 숙소 픽업 및 드랍이 포함되어 있고 둘이 오붓하게 즐기기엔 괜찮다 생각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결제를 했다.


예약 당일이 되었는데 갑자기 날씨 때문에 증류소가 닫았다며 예약 날짜가 하루 미뤄졌다. 어제도 오늘도 아무리 봐도 하늘이 너무 쨍한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알겠다고 한 뒤 다음날 우리는 증류소에 갔다. 이때 알아차려야 했을까… 도착해서 입구에 있던 직원에게 프라이빗 투어를 예약했다고 하니 그게 무슨 소리냐며 우리는 그룹 투어만 있을 뿐 프라이빗 투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댕~ 머리속에서 종이 울렸다. 당했구나…


그 직원은 우리가 그 에이전시를 통해 전달받은 건 오늘 그룹 투어에 너희가 온다는 사실만 전달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 투어는 한 시간 뒤에 있고 한 사람당 만이천원 짜리 투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건 어제 증류소는 오픈을 했고 투어 또한 진행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비가 와도 닫는 일은 없어”라고 했고 에이전시의 거짓말 때문에 여행 일정까지 바꾼 나는 여기서 뚜껑이 열렸다.

 

여행사에 전화해서 따지니 프라이빗 투어의 프라이빗은 온리! 너희를 택시로 픽업하고 드랍해 주는 서비스를 의미한다는 X소리를 했다. 게다가 더 열받는 건 택시 픽업 포인트를 가기 위해 투어와 별개로 또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호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여행사에 따졌지만 계속 “우리는 알려줄 수 없는 벤더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소리만 늘어놓은 채 그쪽에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머리에서 김이 펄펄 나는데 어떤 키 큰 백인 아저씨 한 분이 입구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 프라이빗 투어를 예약했다고 했다. 오마이갓! 우리 같이 당한 사람이 같은 날 한 명 더 있었다. 증류소 직원들은 우리가 이 투어를 위해 지불한 금액을 듣고는 너무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결국엔 외국인 피해자들을 묶어서 이런 일이 있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며 나름의 프라이빗 투어와 캐스크 테이스팅 서비스를 추가해 진행해 주기로 했다. 남편은 씩씩거리는 나에게 괜찮다며 그래도 투어를 할 수 있으니 즐기자며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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