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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Apr 26. 2022

브레히트와 서사극

세상을 바꾸려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난 포스트에 이어 오늘은 현대극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또 다른 인물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만든 ‘서사극’이라는 개념을 알아볼 텐데요. 비슷한 시기에 나고 자랐던 앙토냉 아르토(1896-1948)와 브레히트(1898-1956)는 전후 세대에 맞는 새로운 연극의 형태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나란히 서양 현대극의 '아버지'가 됩니다. 두 사람 다 자신이 가진 연극 비전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쓰고 탐구한 끝에 누구나 쉽게 참고할 수 있는 이론서를 내었거든요.

베르톨트 브레히트

(출처: https://www.imdb.com/name/nm0106517/?ref_=nm_mv_close)


흥미로운 점은 두 인물이 정반대의 방법을 고안해냈다는 사실이에요. 아르토가 감각과 비논리성을 중시했다면 브레히트는 이성과 논리에 집중했습니다. 끝이 없는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아르토는 연극의 제의성을 활용해 파괴적 본성을 정화하는 길을, 브레히트는 연극의 교육적 효과를 활용해 사회구조적 문제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바꾸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마르크스와 사회주의


브레히트는 독일 출신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세계대전 속 나치의 전횡에 무감할 수 없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브레히트는 히틀러가 수상이 되면서 14년간 정치적 망명 생활을 하기도 해요.


마르크스의 말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하게 분석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는 브레히트의 연극에 영감을 주고 방향성을 제시했는데요. 세상을 실제로 바꾸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던 브레히트는 사람들이 감정에 휩쓸리는 대신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연극은 세상이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다양한 선택을 통해 현재의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힘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 생각은 1920년대 독일에서 일어났던 표현주의 운동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표현주의 기억하시나요? 미국의 ‘심리적 사실주의극’에 대한 포스트에서 잠깐 다뤘었죠. 산업화 속에서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상황을 왜곡된 모습으로 그려내며 이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찬 의지에 찬 운동이었습니다.


브레히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마르크스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칼 마르크스(1818-1883)는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로, 물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상의 구조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경제적 기준에 따른 계급 구조를 만들어내며, 사회의 발전은 이 계급 간의 투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기본 사상이었는데요. 이때 상위 계급은 부르주아, 하위 계급은 프롤레타리아로 나뉩니다. 자본주의 구조는 프롤레타리아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그 열매를 부르주아에게 불균형적으로 몰아준다는 부조리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화 ‘기생충’ 속 집의 모습은 이러한 사회적 구조를 가시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노동의 결과를 누리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의 경험을 마르크스는 ‘소외(alienation)’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하나의 단체를 이루어야 자신의 삶의 조건과 환경에 대한 주체성과 자기 결정권을 일정 부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수직적 구조를 가시화한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입니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90603153000502)


브레히트가 만든 ‘서사극’은 이러한 사회주의적 관점을 적용한 연극 형태입니다. 그러면 서사극이 어떻게 사회주의적 생각들을 반영했는지 살펴볼까요?




서사극과 낯설게 하기


서사극이라는 이름은 '서사시'에서 따온 것으로, 고대의 장황한 서사시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때로는 심리적 거리를 두며 전체를 관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이 다가가 함께 울고 웃기도 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브레히트는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감정적 브로드웨이 공연에 회의를 느끼고 연극이 관객을 연극 속 사건에 대한 적극적 개입자이자 책임자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연극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장치들은 서사극에서 사용되는 기법들과 유사했습니다. 몇 가지 예시를 보겠습니다.


기승전결을 따르는 하나의 스토리라인이 아니라 여러 플롯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

관객의 참여를 유도: “제4의 벽”을 깨고 관객과 직접 소통

해설자/진행자의 존재

노래와 대사의 활용: 시와 산문을 오감


고대 비극과는 달리 인물 개인의 선택이 아닌 연극 속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이야기를 이끄는 동력이 됨

해설적이기보다는 교육적: 감정적이 아닌 이성적 반응을 이끌어내고자 함


위의 네 가지를 보면 서사극이 이야기꾼 한 명이 낭송하는 서사시 형태에서 여러 배우가 함께 표현하는 장르로 바뀐 것이나 다름없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판소리와 창극의 관계와도 비슷하죠. 실제로 2015년 국립창극단에서는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창극으로 공연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편 밑의 두 가지 요소는 서사극과 다른데요. 직접적으로 사회문제를 다루는 등 뚜렷한 목적을 가진다는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브레히트에게 있어 무대는 하나의 투쟁 공간입니다.

(출처: https://www.bl.uk/20th-century-literature/articles/brecht-interruptions-and-epic-theatre)


이렇듯 서사극의 형태를 차용하게 된 기저에는 극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데요. 이를 좀 더 직접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브레히트가 고안한 개념이 ‘낯설게 하기’입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노동자의 소외(alienation)와도 같은 표현을 쓰는 이 단어는 독일어로 Verfremdungseffekt이며, 영어로는 alienation effect라고도 합니다. 독일어를 줄여 V-effekt라고도 하죠.


관객의 몰입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브레히트가 사용한 방법을 봅시다.


무대나 소품의 뼈대를 드러내어 사실성을 파괴한다

조명 장치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무대 위에 올리거나, 파편적 무대 배경을 활용하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소품이나 배경으로만 무대와 소품을 표현하는 것이죠. 또한 악단이 눈에 보이거나 무대 위에 존재하기도 하고, 공중에 매달린 소품의 경우 이를 지탱하는 끈 등이 관객에게 그대로 보이도록 합니다.


공연의 여러 부분들이 불협화음을 이룸

대표적으로 가볍고 즐거운 멜로디에 어두운 가사를 입히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사건의 전개가 물 흐르듯 진행되지 않고 뚝뚝 끊어짐

프로젝터(또는 해설자)를 통해 각 막과 장의 제목이나 내용을 미리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에서 오는 긴장감을 해소하고, 관객의 관심사를 ‘어떤’ 일이 일어날지보다는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왜 그런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의도입니다. 이야기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 배경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음악과 노래를 활용하는 것도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야기의 시공간이 지금 현재가 아닌 다른 나라의 다른 시간에서 펼쳐짐

이는 우리에게 친숙한 내용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에 코멘트하는 연극 <햄릿>은 관객이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도록 덴마크의 이야기로 소개되죠.


배우는 배역에 심리적으로 동화되기보다는 배역과 자신을 구분하고 자신의 배역을 설명해주는 자세를 취함

이때 배우는 간혹 배역에서 떨어져 나와 해당 배역이 속으로 생각만 하고 겉으로 말하지 않은 것을 이야기해주기도 합니다.


서사극적 장치건, '낯설게 하기' 기법이건, 연극의 구조적 요소가 자로 재듯 극도로 세심하게 계산되고 있다는 점이 느껴지시나요? 관객에게 생각을 요구하는 것에서도 보이듯, 브레히트는 상당히 생각과 계산이 많은 인물이었을 것 같습니다.  


서사극이 심리극 위주의 공연에 대한 반발인 만큼, 브레히트의 극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완전히 다른 연기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마치 서사시의 이야기꾼처럼, 인물의 심리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기 위해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을 적어두고 이를 계속 보며 인물을 처음 보는 듯한 마음가짐을 다져야 했죠. 서사극은 심리극보다는 배우에게 전문성을 덜 요구했지만, 한편으로 브레히트는 자신의 극에 걸맞은 다양한 연기 훈련 방법을 글로 남겼고 이것이 지금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브레히트에 대한 오해와 진실


브레히트는 여러 오해에 둘러싸인 인물인데요. 대표적으로 그의 ‘낯설게 하기’ 개념 및 연극계에서 다양하게 ‘브레히트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실은 브레히트가 진정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의, 결론을 낼 수 없는 심심풀이 논쟁인 ‘짜장면 대 짬뽕’과 같은 밸런스 게임의 위치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연극에 대한 브레히트의 비전이 글을 쓰며 변화한 것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극에 ‘재미’와 ‘교육’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한다는 점이 원인으로 보입니다. 앞의 내용을 보면 서사극에 도무지 ‘재미’의 개입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요. 브레히트는 사실 연극이 우선 재미있어야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고 교육적 목적 또한 극대화된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극은 상당히 유머러스해서, 브레히트 생전에는 연극의 재미에 본래의 교육적 의도가 묻혀버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의 첫 성공작인 <서푼짜리 오페라>(1928)는 중독성 있는 음악이 인기의 요인으로 꼽혔죠.


‘재미’ 요소를 간과하는 경우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는 관객을 공연으로부터 분리시킨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지루하고 불친절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낯설게 하기’는 서사시에서처럼, 관객을 극에 빠져들게 하는 것과 거리를 두고 관망하게 하는 것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몰입감이 커졌을 때 이에 찬물을 끼얹어 방해하는 것이죠. 재미를 통해 관객을 유인하고, 교육을 통해 이성적으로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브레히트의 극입니다.


또 하나의 오해 아닌 오해는 바로 오리엔탈리즘입니다. 앞서 사회주의, 표현주의, 서사극 등 브레히트에게 영향을 준 다양한 요소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사실 브레히트에게 새로운 연극에 대한 확신을 준 결정적인 사건이 베이징 오페라 관람이기 때문이에요. 망명 도중 모스크바에서 메이란팡(1884-1961)이라는 유명 배우의 베이징 오페라를 본 브레히트는 자신이 알던 연극과 완전히 다른, 사실주의에서 너무나도 벗어난 공연이 정말 많은 경험과 생각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 공연의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연극 이론을 수립하게 된 것이고요.


시라큐스 대학에서 올린 <사천의 선인> 극입니다. '중국풍'이라는 표현의 뜻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출처: http://www.jendonsky.com/good-woman-of-setzuan)


이후로 그의 다양한 극에 ‘동양’이라는 곳, 특히 중국에 대한 판타지가 종종 눈에 띕니다. <코카서스의 백묵원>(1948)은 중국의 백묵원 이야기를 서양의 상황에 접목시킨 것이고, 그의 가장 유명한 극 <사천의 선인>(1943)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주장하면서 막상 중국에 존재하는 지명을 사용하고 인물의 이름과 무대 및 의상 디자인도 중국풍을 사용합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러한 설정이 인종차별적이라는 논란이 제기되어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소비하면서 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조사도 없고, 주로 백인들이 배역을 맡으면서 문제가 된 것이죠.


지금 이야기, 혹시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맞습니다. 지난주 살펴보았던, 아르토의 잔혹 연극 이론 수립 계기와 매우 유사합니다. 현대 서양 연극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두 사람이 사실은 그들이 생각한 가장 이질적인 것, 바로 ‘동양’의 것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극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과연 우연일까요?


소름 돋게도 두 사람이 동양 문물을 접한 방식마저 상당히 비슷합니다. 아르토는 ‘파리 식민 박람회’에서 프랑스가 자신들의 식민지 문물을 과시하기 위해 올렸던, 서양 관객의 입맛에 맞춰 제시된 발리 공연을 보았고, 브레히트 역시 국제적으로 유명한 메이란팡(梅蘭芳, Mei Lanfang)이라는 배우가 구축한 특정 베이징 오페라 형태를, 그것도 러시아에서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양이라는 이미지를 서양과 가장 이질적인 반대의 위치에 놓고 이를 진지한 배움 없이 무작위로 소비하는, 그래서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하는, 그런 행보를 걷습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대사와 이야기, 인물의 심리가 극을 이끄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이 주류를 이루고, ‘우리 연극의 내일은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오는데요. 서양 연극이 동양 연극에 가지는 신비감과 판타지는 아르토와 브레히트의 시대에서 크게 바뀐 게 없어 보입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구축된 아리스토텔레스적 틀을 깨부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서양 현대극이 과연 동양으로 수출된다면 동양 관객에게는 이들이 의도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요? 아르토와 브레히트가 우리나라에 와서도 나름의 의미를 지니려면 이들의 생각이 우리와 어떻게 겹쳐지는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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