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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Sep 27. 2023

공연이란 세상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공연의 제의 기원설과 현존하는 의식들

연극이란 것, 공연이란 것은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의식주에 포함되지 않는 요소지만 어떤 문화권이든 그 특유의 공연문화나 놀이문화가 정교하게 발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 삶의 필수 요소로서 예술은 태초부터 존재해 왔는데요. 특히 공연에 있어서 학자들은 다양한 기원을 추적해 왔습니다. 오늘은 그중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제의 기원설에 대해 알아보고, 다양한 문화권의 제의적 공연 형태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희곡(Drama), 연극(Theatre), 공연(Performance) 


제의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제의와 공연의 상관관계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학계에서는 공연예술을 세 가지 분류를 통해 이해하고 있는데, 각자가 지칭하는 대상이 조금씩 다릅니다. 희곡(Drama), 연극(Theatre), 공연(Performance)으로 나뉘는데요. 간단히 말하자면 뒤로 갈수록 더 폭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희곡은 지난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듯 대본 위주의, 문학적 개념에서의 정극을 일컫습니다. ‘어떻게’ 상연되느냐 보다는 ‘무엇이’ 상연되는지, 그 내용에 포커스를 두지요. 연극은 이보다는 조금 더 넓은 개념으로, 현장감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숙련된 예술가들이 무대라는 공간에서 관객에게 주로 대본 위주의 기예를 선보이는 형태입니다. 관객과 공연자들은 연극의 인위성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영어의 Theatre는 Teatron이라는 그리스어에 어원이 있는데요. ‘보다’라는 의미를 가진 만큼 춤, 서커스, 음악 등 대사 없는 공연 형태를 포함합니다. 


마지막으로 공연이란, 신체, 물질, 또는 다양한 표현 방식을 통해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의 일원으로서 행위하고 존재하는 모든 행태를 포괄합니다. 영어로 Performance는 Perform의 명사죠. Perform은 do, ‘하다’라는 동사와 통하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doing, 즉 행위를 일컫습니다. 이러한 ‘퍼포먼스’에는 종교의식, 각종 행사, 시위, 운동 경기, 식사 매너, 소셜 미디어 상의 표현 방식 등 온갖 종류의 인간 삶의 단면들, 그리고 그들이 구축한 소통 관습들이 포함됩니다. 




제의와 구연


이렇듯 공연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제의에 닿게 되는데요. 인간 삶의 단면들 중 가장 그 예술적 측면이 집약적이고 정교하게 담겨 있으면서 인류의 기원부터 존재했던 관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제의가 차차 어떻게 연극으로, 또 희곡으로 변화돼 왔다고 보는지는 다음 포스트에서 다루도록 하고, 오늘은 제의가 가진 연극적, 공연적 특성들을 알아보겠습니다. 


글이 보편화되기 전 구비문화에서는 제의와 구연이 이야기가 전달되고 순환하는 중심 통로였습니다. 이 ‘이야기’란 이전 포스트(https://brunch.co.kr/@minupark/6)에서 한 번 다루었던 민간설화나 전설과 같은 것들이지요. 전달하는 주체는 주로 무당, 이야기꾼, 사제, 원로 등으로, 이야기에 담긴 인생의 의미를 몸으로 소화한 전문가들이 담당하였습니다. 그 당시 공동체 사람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살을 붙여가며 이야기했기에 생생하고 계속 변화하는 특성을 지녔습니다. 구연과 제의의 차이라면 제의에서는 이야기가 뼈대 위주로 단순화되는 대신 볼거리가 많고 화려한 장관을 보여준다는 것이겠지요. 제의의 소품과 대사, 소리들은 상징적이고 비일상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고요. 




한국: 굿 

(이미지 출처: https://myseoulbox.com/blogs/seoul-blog/the-role-of-shamanism-in-korean-mythology)

우리나라 또한 고유의 연희 형태가 모두 무속의 굿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연 학계에서는 한국의 무당이 접신을 통해 목소리, 몸짓, 표정으로 성별을 넘나드는 다양한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을 일인극과 같은 흥미로운 극적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다음 영상을 보며 굿과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공연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수업 자료로 준비하다보니 한국에 대한 내용이지만 영어로 소개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BqQVs4NJLk&list=PLpuhPUF1iWOF_iUbVFW4hgdZU_rR9hLHm&index=7&t=2s 


공연적 요소를 생각하면서 보니 굿이 조금 다르게 보이셨을까요? 굿에는 전반적으로 공연적 특성보다는 제의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의적 특성을 몇 가지로 정리하자면, 오락성, 공동체성, 치유, 기의 순환, 비일상성을 들 수 있는데요. 공연과 유사하지만 다른 점도 꽤 많죠.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차이점: 

정확한 묘사나 의미 등 내용적 측면보다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기운과 힘이 더 중요하다 (실질적 결과를 가져온다,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특별하고 특정한 (예: 영적인) 힘에 닿는다)

전문가의 존재 (전문가에게는 특별한 힘에 접근하고 이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이를 통해 병을 진단하거나 치유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공동체를 위해 이 능력을 발휘한다) 

유사점: 

현대에도 이어진다 (제의는 원시적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이지만, 현대에도 수요는 계속되며, 현대 사회의 물질적, 영적 문제를 다루는 데에 효과적인 한 방법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공연이란 한 가지 종류가 아닌 다양한 인간 소통의 형태를 포괄하며, 제의와 공연은 모두 모방, 유희, 상상과 같은 인간의 근본적 욕망의 집합체로 우리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요루바: 에군군 축제(Egúngún Masquerade)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homktpVQUO8) 

지금도 살아있는 다양한 문화의 제의를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첫 번째로 요루바의 에군군 축제입니다. 요루바족은 토고, 베닌, 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 해안지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민족으로 그 안에서도 다양한 문화와 사회 구조, 언어 등을 사용합니다. 에군군 축제에서는 가면을 쓰고 조상신을 초대하여 경의를 표하는데요. 공연자는 가면과 의상으로 몸 전체를 덮고 조상신이 되어 춤을 추며 마을을 돕니다. 우리나라의 명절과 같이 온 가족이 모여 영적 정화를 받을 수 있는 행사입니다. 동영상으로 축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실게요. 

https://www.youtube.com/watch?v=1gj0jR9HVgU&list=PLpuhPUF1iWOF_iUbVFW4hgdZU_rR9hLHm&index=7 

영상에서는 마을의 남자 일원들이 무당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원래는 여성이 수행하던 역할이라고 하니, 여자 무당이 훨씬 많은 한국의 무속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요. 선택받은 사람들만 직접 신을 모시며 가면을 쓰고 춤을 출 수 있다는 점도 제의적 요소를 보여줍니다. 여성 일원들이 가족의 역사를 읊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에 이야기 전달적 요소가 담겨 있고요. 요루바 축제 중 단연 가장 화려한 의상이 돋보이는 행사라고 하니, 그만큼 오락적 요소 또한 다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야/과테말라: 라비날 아치(Rabinal Achi) 

(이미지 출처: https://www.pressreader.com/honduras/diario-la-prensa/20200126/282587379947767)

과테말라에서 지금도 매년 진행하는 라비날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상연되는 라비날 아치라는 연극이자 제의입니다. 라비날 아치는 스페인 지배 이전, 마야의 마지막 공연 형태를 잘 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정복자들의 검열로 인해 후대에 남길 기록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략되고 삭제된 부분이 많아 그 원형까지는 알기 어렵다고 합니다. 공연은 라비날 마을과 이웃 키체 마을의 대립을 담은 민간 설화를 전합니다. 반란을 일으켰다가 잡힌 키체의 대장이 라비날 장군 앞에 불려 와 설전을 벌이며 두 마을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검토하고 패전장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내용입니다. 


점잖고 품위 있게 진행되는 대화와 그 안에 담긴 인간적 고뇌, 그리고 의식화된 죽음과 이후 모두 함께 춤을 추는 부분들이 이야기의 잔혹성보다는 철학적, 영적, 제의적 요소를 강조합니다. 즉 역사적 사실관계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보다는 라비날 마을의 승리로부터 그 역사의 기원을 찾으며 내, 외적 위기에 잘 대처하여 생존할 수 있는 힘을 되새기는 것에 그 의의가 있지요. 특유의 가면을 쓰고 느리게 진행되는 행사의 제의적 색채를 느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KR8PyhFshu8&list=PLpuhPUF1iWOF_iUbVFW4hgdZU_rR9hLHm&index=9 

축제 기간 동안 공연자들은 가면을 조상신을 담을 상징적 물체로 모시며 향과 불을 피우고 기도를 하며 경의를 표한다고 합니다. 역시 이야기를 전하는 공연 형태를 띠지만 제의적 특성이 강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란: 타지에(Ta’zieh) 

(이미지 출처: https://ifpnews.com/tazieh-an-islamic-passion-play-depicting-battle-between-good-evil/)

이란의 수난극 타지에도 매년 활발히 공연되는 제의성을 지닌 행사입니다. 이름 자체에 애도라는 뜻이 담긴 만큼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고 눈물과 애도를 통해 공동체를 정화합니다. 카르발라 전투에서 전사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 후사인 이븐 알리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요. 지원군도 없이 처참한 전투 끝에 전사한 사실이 그의 지지자들에게 큰 분노를 선사하여 현재 이슬람의 한 분파인 시아파가 떠오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공동체적, 제의적 의미 덕에 정치성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계 일원들이 큰 규모로 모여 공동체 정신을 다지고 위로받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공연자들은 숭고한 역사 속 존재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직접 그들을 연기하기보다는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대본을 들고 대사를 읊으며 자신이 해당 인물을 대신한다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무대를 준비하는 데에 큰 요구조건이 없어 언제 어디서든 상연될 수 있지만, 선명한 색채의 의상을 활용하여 선과 악의 대립을 표현하고 사실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이고 간결한 표현을 통해 내용을 전달합니다. 간혹 실제 말까지 등장하여 생생한 전투의 현장감과 후사인의 위엄 또한 표현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는 등 엄격한 제약이 없어 제의와 공연의 중간 지점에 있는 의식으로 연구되곤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tMIjHteW9c&list=PLpuhPUF1iWOF_iUbVFW4hgdZU_rR9hLHm&index=12 




어떠셨나요? 살펴보신 행사들에서 오래된 고대의 신성한 느낌이 났나요? 사실 한국의 굿과 요루바의 에군군 축제는 오래된 제의가 맞지만, 라비날 아치와 타지에는 15, 16세기, 즉 중세에 행해진 행사입니다. 확실히 현대로 오면서 조금씩 더 극적 요소가 부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서양을 제외한 다양한 문화권에서 행해지는 제의의 극적 요소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서양의 제의는 상당히 다른 철학과 이해를 기반으로 상연 방식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후 점차 발전하게 되는 공연 형태도 다른 지역들과 다른 양상을 보이지요. 다음 포스트에서는 서양 연극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그리스로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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