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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Oct 13. 2016

이야기 들어주는 게 뭐가 그리 힘들까?

 제발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누구나 그렇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는 건 쉽다. 좋아한다. 그러나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어렵다. 싫어한다.

사람 마음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남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들어주기란 어렵고 좋아하지 않는다. 청소년 업무를 하고 있다는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청소년과 관련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적극적인 경청'이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학교 선생님은 학생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한다. 부모는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한다. 경찰관 또한 국민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한다. 물론 나의 경우라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된다. 경청만으로도 그 자체가 큰 힘이 된다. 이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경청'의 힘이다. 


아이는 이야기했다. 

최근에 학교에서 겪고 있는 힘든 일들을 어렵게 끄집어냈다. 그랬더니 엄마는 엉뚱한 소리를 하신다. 이야기를 안 하는 게 맞는 거였어.


"부모님께 말씀은 드렸어?"
"며칠 전에 말씀드렸는 데 저에게도 문제가 있대요"
"너한테 무슨 문제가?"
"모르겠어요. 그냥 엄마는 저도 문제가 있으니까 괴롭히는 친구가 트집을 잡는 거 아니냐고."
"말도 안 돼."


문자다. 

담당하고 있는 학교 학생이라며 상담을 요청했다. 보통은 카카**이나 페이**으로 오는 데. 이 친구는 SMS 문자로 왔다. 번호도 저장되어 있지 않는 친구다. 


미안했다. 하필이면 사무실에서 급히 처리할 일이 있었다. 혹시라도 다급한 상황이면 당장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그 친구도 사정은 나와 비슷해 보였다. 아마도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문자가 소곤소곤 거렸다. 



물증이 없어도 학교폭력을 신고할 수 있나요?


증거가 없으면 힘들겠지. 어느 범죄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학교폭력의 경우 물증이 없다면 상황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라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목격자 진술 정도는. 그런데 목격자들이 있더라도 진술을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한다면 어려워진다. 


밤 10시 5분.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자마자 상담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 밖이다. 혼자는 아닌 듯했다. 옆에서 거들어주는 두, 세명의 친구들 목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는 차량 소리도 들리는 걸 보면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를 받은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어볼까?  


들어보니 심각했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은 나와 다를 수 있다. 아니 별로 심각한 것 같지 않은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건 매우 심각한 학교폭력 사례다. 특히 여학생들에게 일어나는 아주 위험한 사례에 해당한다. 내용을 들어봤더니.

상담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상담학생 반에는 전교 1,2등을 하는 한 여학생이 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자신만을 겨냥해서 친구들에게 욕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물론 교실에 자신이 옆에 있는데도 대놓고 시비를 걸고 욕을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이야기를 하면 '너한테 이야기한 거 아닌데 왜 그래? 이런 식이다.

그 여학생은 1학년 때도 만만한 반 친구를 겨냥해서 집중적으로 괴롭혔던 여학생이라고 했다. 그런데 2학년 올라와서는 자기가 그 타깃이 되었다. 지금은 그 여학생이 자기를 빗대어 너무 많은 비난과 욕설을 하고 있어서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친구만 보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께도 말씀드렸다고 했다. 소용이 없었지만. 상담학생 딴에는 얼마나 이야기하기가 망설여졌을까 짐작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선생님께 말씀드린 결과가 고작 증거가 없으니 이해하고 모른 체하라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 상담 친구는 대뜸 학교가 그 여학생을 비호한다는 말투로 이어갔다. 쉽게 말해, 공부를 잘하니까 봐준다는 거다. 당연히 공부를 잘하니 학교를 빛내고 명문대학으로 진학할 친구니까 자기 딴에는 비호를 해주는 게 이해가 된다고까지 말했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닌데 상담학생의 이야기를 끊고 쉽지는 않았다. 


"그 친구를 처벌하고 싶니?"
"아니오 처벌보다는 그냥 괴롭히지만 않으면 돼요."
"그대로 돌려주고 싶지 않아?"
"아니오, 그럼 저도 그 친구랑 같은 사람이 되잖아요."
"맞아."
상담학생은 참 멋있었다. 


보통은 내가 당한 만큼 가해학생도 돌려받아야 돼 라고 생각한다. 신고 시점부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들의 분노가 누그러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신고 당시에는 무조건 처벌부터 해달라는 것이 학생들의 특징이다. 그런 특징 때문에 피해학생이 다시 가해학생이 되는 누를 범하기도 한다. 사실, 현장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상담학생은 멋있었다.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기 전, 먼저 엄마한테 이야기 한 사실도 말해주었다. 물론 어렵게 고민하다 이야기를 꺼냈는 데 엄마는 엉뚱한 이야기를 해줬다고 했다. 너한테 문제가 있으니까 그 친구가 너를 비난하고 욕하는 거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고 했단다. 여기서 굴뚝이 왜 나오는 모르겠다. 아이의 엄마인데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1분을 이야기하고 30분 동안 엄마한테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평소 학교에서 어떻게 하고 다니길래... 등등. 이렇게 되면 자녀는 더 이상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평생일 수도 있다.    


"아저씨가 네 연락처를 뭐라고 저장해 놓지?"
"죄송해요 나중에 제 학번이랑 이름 밝힐게요."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상담 학생은 내게 고맙다고 했다. 지금까지 이번 일로 자기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준 사람이 나라고 했다. 당연한 건데 별게 다 고맙다. 그래도 상담학생이 또박또박 고맙다고 하니 나도 상담학생에게 한 가지 부탁했다. 이후에도 고민이나 갈등이 생기면 언제든지 내게 연락하라는 부탁.  그러면서 물었다.


"분노 게이지가 1부터 10단계 라면 지금 네 분노는 몇 단계일까?"
"화가 많이 치밀어 올랐을 때는 9나 10단계가 될 때도 있어요."
"평소에는?"
"평소에는 그래도 7,8단계는 돼요."


꽤 높은 단계다. 

분노 게이지가 평상시 7,8 단계면 매우 높은 수치다. 그리고 걱정이 됐다. 상담학생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 분노 게이지가 7,8단계가 되면 언제든지 2차 범죄가 일어날 여지가 높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담학생이 가해학생을 폭행하거나 같은 방법으로 괴롭히게 되는 역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였다. 그래서 부탁했다. 이후에도 반드시 연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아저씨. 


결국, 학번과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쑥스러운 것보다 나마저도 믿지 못한다는 뜻이겠지만 서운하지는 않다. 당연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상담학생은 걱정 섞인 말투로 머뭇거리며 내게 말했다. 오늘 이야기는 선생님과 부모님께 절대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면서 자신은 세 가지 방법을 놓고 고민하겠다고 했다. 첫째는 물증을 찾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 둘째는 경찰관이 중재해서 자신과 가해학생을 화해시켜주는 것. 마지막으로 셋째는 학교 학생 안전부에 연락해서 학교차원에서 이 사건을 논의해줄 것을 부탁하는 것.   


청소년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자녀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면 될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부모님의 역할이다. 


부모님과 대화가 된다면 사실 선생님이나 경찰관의 역할은 많이 줄어든다. 효과 또한 선생님과 경찰관에 비해 매우 높다. 회복의 기간이 매우 빠르다는 것을 경험해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부모님의 경우에 아이가 힘들었다고 해서 단지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발끈해서는 안된다. 그건 절대 아이가 원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신중하고 침착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담임선생의 역할이다. 


물론 담임선생님은 많은 학생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한 학생의 의견에만 치우쳐서 도움을 주기란 어려움이 있다. 이해한다. 특히 청소년 업무를 하고 나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더라. 하지만 적어도 학생이 도움을 요청하면 학생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있다. 학교의 사정과 학생들의 사정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양쪽 부모님의 사정까지 미리 예견하면 선생님 입장으로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좋게 넘어가자'라는 결론이 불쑥 나오는 경우가 이런 경우다. 그런데 선생님마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아이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나이를 감안했을 때 옳지 못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피해학생이었던 친구가 가해학생이 되는 원인이 되는 것처럼. 스스로 방법을 찾은 것이 보복일 수밖에 없다. 


물론, 학생이 생각한 대로 꼭 그런 건 아니다. 


상담학생은 그랬다.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지만 물증이 없으니 참고 견디라고. 정말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당시 분위기를 모르는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한민국 선생님께서 그렇게 무책임하게 이야기하는 선생님은 없다는 것에 내 전재산을 건다. 부드럽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것도 차근차근. 선생님도 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했을 것이다. 학교 입장을 생각해보면 신중할 수밖에 없다. 담임선생님께서 그렇게 말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선생님 입장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려면 정확한 사실관계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필요하다. 


상담을 마치고 마음이 씁쓸했다. 


아이는 힘들어서 자기 말을 들어주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를 나무랐다고 하니 마음 한 구석이 착잡했다. 힘든 건 알지만 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힘들까? 힘든 건 아니겠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거라는 걸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결국 우리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닌데. 그냥 엄마, 아빠가 나의 말을 적극적으로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뿐인데.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우리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계신가요? 우리 아이를 위해 '적극적인 경청'을 부탁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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