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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Aug 03. 2016

그래도 아이의 자존감이 먼저였다.

엄마를 잃고 왕따를 당하고 있는 아이를 위해

밤 10시, 전화벨이 울렸다.

스마트폰확인한 순간 반가운 분께서 전화를 주셨다. 그리고 너무 오랜만이다. 지난해 청소년 업무 때문에 꽤 자주 만났었던 사이인데 선생님께서 다른 부서로 가시는 바람에 그간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실 분이 아니신데, 전화를 하셨다는 건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 너무 오랜만이십니다. 선생님. 잘 지내셨죠? "
" 늦은 시간에 연락을 드려 너무 죄송하네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무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화중에 '메시지' 알림음이 울리면서 선생님은 내게 메시지를 확인부터 해달라고 하셨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의 캡처 사진이었다.

"당하고 있는 아이가 제 큰아들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고요..."

"아... 그래요..."


긴 이야기를 먼저 했었다. 자녀가 이렇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석 달 전에 병으로 아내를 잃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내를 잃지만 아들 사랑하는 엄마를 잃었다고 했다. 초등학생 5학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이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한 이유는 착하고 씩씩했던 아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학교에서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보내온 사진처럼 지금 상황이 몹시 안 좋아진 것 같다며 조언을 구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했다.  


자녀는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너무 씩씩해서 오히려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했던 아이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그런데 엄마의 이별이 충격이 되었을까? 그때 이후로 말수도 적어지고 장난도 잘 치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일 때가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물어봐도 대답은 하지 않고.


자녀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축구라고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예전에는 학교 갔다 오면 친구들하고 축구도 곧잘 하고 해서 들어오면 자기가 몇 골 넣었는지부터 수다를 떨곤 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다고 했다. 


일단 선생님이 자녀의 캡처 사진에 대해 자녀가 알고 있는지 물었다. 아니, 모른다고 했다. 자녀 몰래 캡처한 것이라 아직 자녀는 모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안에 대해 학교에 신고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나의 의견대로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신고를 통해 조치를 받는 것보다 이 메시지가 실제 어느 정도 수위인지 또 자녀는 이 것에 대해 얼마나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지를 천천히 확인하고 최종 결정을 하자고 했다. 선생님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평소 친분이 있던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 홍보팀 사무실을 찾았다.  4년 전부터 이끌고 있는 청소년 동아리와 같이 캠페인을 한 탓에 홍보담당자를 만나 선생님의 속사정을 편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담당자의 마음도 나와 같았다. 


나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이 자존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엄마로 인해 겪었어야 할 상실과 우울을 당당한 자신감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그래서 마침 축구를 좋아하고 또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팬이라고 해서 마침 평소 친분이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홍보팀 사무실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담당자와 나는 자녀에게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던 중 축구 감독님과 선수들에게 친필 사인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면 어떨까 생각했고, 정말 고맙게도 당시 축구감독이셨던 '김도훈' 감독님과 전 선수들이 허락해주셨다. 솔직히 응해주실까 조마조마했는 데 다들 너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선생님과 함께 자녀를 만났다. 그리고 카톡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앞으로 그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앞으로 아저씨랑 함께 의논하자고 약속했다. 그래서 이후에도 언제든지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꼭 연락을 하기로 했다. 아이도 무척 반기는 눈치였다. 그리고 다시 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있으면 이번 축구경기 때 선수들 친필 사인을 받게 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아이는 펄쩍 뛰며 너무 좋아했다. 


인천유나티이트 축구단 덕분에 아이는 너무 행복한 경험을 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선수단 라커룸에 들어가서 자신이 존경하는 감독님과 선수들과 일일이 돌아가며 친필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선수들이 아이에게 항상 응원하겠다고 격려를 엄청 해주었다. 함께 온 아이의 친구들도 덩달아 함께 좋아했다.


그렇게 행복한 이벤트를 마치고 나는 아이와 친구들을 데리고 청소년 경찰학교에 가서 신나는 경찰 직업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마치고 나서는 함께 영화도 보았다.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에게 이 친구 옆에는 언제나 든든한 경찰관 아저씨가 있다는 걸 은근히 알려주고 싶었다. 


다음날 퇴근 무렵에 선생님께서 사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맙습니다. 경위님."
"고맙긴요... 아이가 좋아해서 너무 다행입니다. 꼭 자신감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어제 사인받은 축구공을 오늘 학교로 가져가서 사이가 안 좋았던 친구들까지 함께 축구했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메시지 내용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잘됐네요...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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