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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브런치를 좋아해

by 미누

“언니, 요즘도 글 써?”


3년 만에 만난 YS와 나는 미술관 카페에 마주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는 푸르른 나무와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우리는 시원한 카페에서 샐러드와 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여유일까. 그녀는 동생의 미국 생활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대기가 두 시간이라는 피자집을 꼭 가야 하냐는 화제로 웃음을 나누었다. 그러다 핸드폰을 내밀며 남편의 글을 보여주었다.


“내 남편이 글을 써. 매일 아침 시를 올려. 이거 봐.”
“오, 정말 대단한데.”
“뭐… 책을 좀 더 읽어야 할 것 같긴 하지? 그래도 참 대단해, 그치? 언니는 어때?”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3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아이가 깨기 전, 5시면 알람에 맞춰 일어나 글을 쓰고,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유치원에 보내고, 다시 글을 쓰다가 아이를 맞던 기억들.


요즘의 나는 어떤가. 일을 시작한 후로는 알람을 조금 늦추었지만, 여전히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곤 한다. 커튼을 열고 커피를 내린 뒤 노트북 앞에 앉는다. 주로 일기, 그리고 그 너머의 글쓰기다. 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알람이 울리고,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내고, 나는 다시 글을 쓰다 일상을 연다.


응. 요즘도 글을 쓰지, 나는.



브런치를 만나다


브런치를 처음 만났을 때, 책을 내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다만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고, 그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고 즐기는 법을 배워야 했다.

평범한 글에도 달린 작은 파란 점은 별사탕처럼 느껴졌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누군가의 관심. 처음엔 오래 못 갈 줄 알았는데, 글을 쓰는 게 점점 좋아졌다. 하루 안 쓰면 허전해지는 날이 찾아왔다. 책을 내고 싶다는 꿈도 생겼고, 그 꿈을 향해 치열하게 써 내려간 몰입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에 그치지 않았다. 목표를 세우고 글에 몰입하는 순간, 나는 퍼져 있던 마음을 글로 불러 모았다. 한 자 한 자 쓰며 기억과 마음 깊숙이 잠영하는 시간. 그러다 숨을 쉬러 올라오면, 잠시 세상과 떨어진 듯 고요했다. 하지만 삶은 결국 별개가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변함없었지만, 예전과 같이 두렵지는 않았다. 내겐 돌아올 자리가 있었으니까.



글쓰기란 무엇인가


“굳이 돈 쓰며 나가서 먹냐, 집에서 빵 굽고 커피 내리면 여기가 카페지.”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브런치 카페를 좋아했다.

창밖 풍경은 집과 다르고, 음식과 커피의 맛도 다르다. 그런 것들이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하기도, 들뜨게 하기도 한다. 갓 구운 빵, 커피 향, 햇살에 반짝이는 나무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음악. 얼마나 평화로운가.

브런치는 바쁜 일상에서 누리는 여유였다. 하지만 나도 점점 엄마를 닮아갔다. 나 자신에게 돈과 시간을 쓰는 게 인색해졌다. 그러다 생각했다. 어쩌면 맛있는 걸 여유롭게 먹는 호사보다 더 큰 호사는, 글을 쓰는 지금의 이 시간일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보지 못하는 나에게 말을 거는 대화. 비밀의 화원, 꿈이 영그는 도서관, 연필로 하는 명상, 타자로 두드리는 기도.

발견은 때로 무서운 것이다. 콜럼버스가 지구가 동그랗다는 것을 발견 한 뒤에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듯. 내 안의 갈망에 눈을 뜨면 내가 걸어온 길을 벗어나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수면 위를 건드리는 작은 물방울. 그 물방울이 일으킨 파동은 결국 바다를 뒤집는다. 머무를 수 없게 만든다. 나의 배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다시 정박할 곳을 찾기 위하여. 그러나 그 항해가 곧 내 삶의 전부라는 막연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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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창작, 행복과 비움. 나는 그 사이에서 줄을 타듯 아슬아슬하게 한 발자국씩 내딛는다. 하지만 그 불안한 항해 덕분에 또 다른 섬에 닿을 수 있었다. 어제의 바람과 별빛을 기억해 글을 쓰고,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나.

이제는 오히려 문학을 업으로 삼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글을 업으로 가졌다면 지금처럼 즐길 수 있었을까. 언제나 나약하고 빈약한 내 글을 흘려보내면서도, 다시 쓰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일까. 아마 오늘은 더 가볍고, 더 편안해지고 싶어서일 것이다. 마치 햇살 좋은 창가에서 좋아하는 친구와 나누는 브런치처럼.



오늘의 브런치


나만 더 힘든 것도, 나만 더 바쁜 것도, 나만 더 아픈 것도 아니었다. 내 글에 달린 파란 점의 공감은 모두 “나도 그렇다”는 안심이자, “너도 그러냐”는 위로였다.


미술관에서 마주 앉은 친구가 말했다.
“언니, 언니를 응원해.”


오늘도 나는 나만의 브런치 시간을 갖는다. 지금 만큼은 일도, 돈도, 인정도, 사랑도 지금은 다 필요 없다.

나는 나로 귀환해 울다가 웃다가, 멍하니 앉았다가,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지금 나는 브런치를 먹고 있는 중이다. 커피 한모금, 계란 한 조각, 샐러드 한 잎을 음미하는 중이다.

내 글도 삶도 언제나 절벽 아래에서 줄을 타는 것처럼 절실하지만, 그 줄을 내려놓고 나면 나는 더 포근한 땅에 안착하리라는 믿음을 되씹는다.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내 글을 읽어준 독자들. 작은 점 하나 눌러 다시 쓰라 용기를 준 사람들.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독자이자 작가들에게.

나를 여기까지 견인해 준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다시 정박한 배에 발줄을 풀어 항구를 떠날 준비를 하는 나의 용기에도 감사한다.

그 길에 지도는 없다. 그리고 목표도 없다.

다만 누군가의 공감에 힘입어 나를 믿고 또 다른 섬으로 떠나는 그 항해를 즐기는 '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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