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by 미누


서두


오랜만에 글을 쓰는 건 생각이 너무 많아서 일 것이다. 혹은 생각이 너무 없어서일까. 요즘은. 어떤 것을 정의 내리기가 쉽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내 앞에 놓인 것들을 쳐내는 것에 급급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인생에 발견할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너무 진지하게 살고 싶지도 않다. 일기를 쓰지 말자고 하면서도 결국에 나는 일기를 쓰게 된다. 일기 형식의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그 무언가의 목적도 없다. 내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이 쌓이면 나는 나도 모르게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나만의 마감일, 크리스마스


2년 전부터 나는 새해를 기념하거나 생일을 기념하기보다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게 되었다.

이유는 없으나, 어디에선가 보았던 책의 구절 때문이리라고 추측된다. 12월 25일 눈이 내리는 성탄절은 세상을 잠깐 잊게 하거나, 세상에 다시 내려오게 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된다. 하나의 챕터가 끝나고 다시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그 시점을 나는 크리스마스로 잡기로 했다.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고, (난 따뜻한 부산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겨울에 눈이 오는 것 자체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성당에서 내가 연모했던 어떤 남자(한 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동시에 누군가를 좋아한 건 아니고.)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주고, 나도 그 답례로 무언가를 받게 되는 지극히 소박한 상상을 하면서. 정말 나는 그때 조금 더 무모할 필요가 있었다.


여하튼 그런 상상이 실제가 될 수 있다면, 이라고 바라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 자체가 크리스마스의 마법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주위에 고백하고 싶은 성당 오빠도 없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바람도 없지만, 나는 여전히 크리스마스가 설렌다. 내가 노년의 나이에 들더라도 그럴까?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는데 아직 그러한 걸 보면, 아니 어쩌면 더 간절한 걸 보면 노년이라고 마음이 늙거나 소원이 초라해지는 법은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엄마는 아직도 크리스마스에는 들뜬 마음으로 케이크를 주문하고 구부러진 어깨와 힘없는 다리의 육체이지만 얼굴에는 그때의 그 아름답고 소녀스러운 생기가 감도니까.


1년을 다시 선물 받았다는 생각은 몇 번의 다들 있을 법한 죽을 뻔했을지도 모르는(우리는 감기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고, 혹은 차에 치이거나, 나처럼 바다에 휩쓸려 죽을 뻔할 수도 있다) 경험들을 통해서 하게 되었다. 생각은 애써서 하는 게 아니고 내게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그때였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느낌과 감사함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에서 느껴지는 환희를 처음으로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다시 또 기분에 허우적대고 어떤 사건으로 저 바다 밑으로 잠수해 들어가기도 하지만(이때 바다는 정말 바다가 아니니까 죽지는 않는다) 그때의 기분은 하나의 앎이 되었다. 그래서 그냥 그것은 어떤 사실이 되어서 내 삶에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분명하다. 나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 죽을 때 가장 후회할 것은 그토록 무겁게 살았던 것이다....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크리스마스 전에 내가 일상에서 하면 좋을 것들을 적어둔다. 뭐 적다 보면 돈에 관련된 것도 많다. 그리고 적다 보면 정말 내기 이토록 속물이구나 싶을 때도 있지만 속물이 아닌 척하면서 원망하는 것보다는 속물이 되는 편이 낫다고 느끼게 된 것도 나이가 들면서 자유로워진 점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도 마감이 필요하다. 그 마감은 누구나의 마감 시점이 아니라 내가 정할 수 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은 크리스마스였고 그때마다 나는 내 한해를 마감해서 접어서 보내주기로 했다. 그토록 무겁고 시렸고 아팠던 기억은 같이 울어주고, 그토록 소중하고 행복하고 달콤한 기억들은 다시 빳빳하게 다려서 서랍에 넣어둔다. 그게 나의 할 일이며 또 그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 나는 1년을 살아낼 것이다. 또 다른 마감을 위해 내년에는 또 다른 버전의 내가 살아낼 그 어떤 삶을 나는 12월 26일 비로소 시작하게 된다.


나는 비로소 새로워졌고 그러할 것이고, 나는 어제의 나와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1년 전의 12월 26일을 시작했던 MJ와 다른 MJ이다. 아무리 정돈하려 해도 정돈될 수 없는 인생의 일들과 그리고 주식 그래프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내 감정들을 나는 정리할 필요도 없고 이해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인생은 폭풍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 일이고, 그 폭풍을 잠자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자연의 일이고, 나는 단지 비가 오면 우산을 펴고, 혹은 젖거나, 바람이 불면 스웨터를 꺼내어 입고 잠깐 산책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 이상 내가 무엇을 더 알 수 있다는 것일까.


난 내일도 아마 또 열심히 살 것이고, 그러고도 후회할 것이고, 안될까 봐 안절부절못할 것이고, 나만 이런 게 아닌가 싶어 주위를 둘러볼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정말로 그렇다. 정말로 괜찮다. 왜 아무도 내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게 주는 선물, 여행


그런 의미로 나는 크리스마스를 지낸 다음 날, 2년 전부터 계획헀던 여행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여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뭐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난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이란 것. 오래전 내가 그토록 하고 싶어도 현실 때문에 접었던 그 꿈의 작은 조각을 맞춰주고 싶었다. 돈을 버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닐까. 소중한 나의 꿈에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해서 내가 한 땀 한 땀 벌어내고 이겨내는 시련들은 결국 나의 자유를 위한 게 아닐까. 그 게 아니라면 돈은 어디에 써야 하는 것일까. 난 그것에 대한 답을 내 안에서 찾기로 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지 않게 글의 방향이 크리스마스로 흘러갔다. 나는 내 여행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여행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생의 소원이자 이루지 못한 꿈이 될 수도 있는 소망들을 나는 펑펑 터트리면서 사는 사람이고 싶다. 풍선이 저 높이 하늘에 닿기 전에 바람이 빠져 버릴 것이고, 나는 지상에서 풍선들을 터뜨리면서 내 꿈을 이루어내고 싶은 아주 원하는 것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은 그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써 내려가며 내 인생에 대한 기대를 적어가던 아직도 그런, '사람'이다. 살아 있는 생명이다.



나에게로 가는 길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파타고니아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한 젊은이, 아니 또 다른 젊은이들도. 그들이 도시에서 찾지 못한 그 무엇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에게는 무모한 여행이 결국 길이 되어 그들을 살게 할 것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결국 길은 내가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쉼표도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은 간으로 큰 꿈을 품어내느라 지친, 몽상가임에도 현실가의 배역을 잘 살아내느라 수고한 나.


비록 낭만적인 크리스마스와 벅찬 여행의 끝에 밀린 빨래와, 카드값 고지서들을 확인하며 한숨을 쉴지라도.

아마 올해 가장 잘한 일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준 나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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