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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n 21. 2023

새해 목표는 해방

인생의 꽃이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꽃들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지는가! 열매를 맺는 꽃들은 얼마나 그 수가 적으며, 그 열매 가운데서 무르익는 것은 또 얼마나 적단 말인가!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새해 목표 다 세웠니?"

 새해가 되었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새해에 건네는 형식적인 인사말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교실 가장자리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는 거요."

 웃음이 나왔다. 그래, 오죽할까. 아이들도 참고 산다. 먹고 싶은 거 참고 다이어트를 하고 놀고 싶은 거 참고 공부를 하고 자고 싶은 것도 참고 학교에 온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너희들도 마찬가지구나. 진실의 가느다른 목소리에 다른 아이들이 웅성댔다. 

 "아니 그게 가능해? 대학가야 할 수 있는 거지."

 ‘대학’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새해라는 화두에 걸맞게 교실 분위기가 사뭇 엄숙해졌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밖으로 나서자 교무실에 이르는 긴 복도가 나왔다. 골목을 따라 걷는 동안 나의 발걸음을 살폈다. 누가 볼세라 조용조용 사뿐사뿐, 얌전한 나의 발걸음이었다. 나는 사실, 한 번쯤 이 복도를 뛰고 싶었다. 나도 마음껏 살 수는 없는 어른의 처지였다.

 "그래, 너에게도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그 해의 한 겨울에 나는 제주도로 떠났다. 홀로 일주일쯤 차로 제주의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여행 온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살필 이유는 없었다. 어느 날은 감기에 걸려 몸이 아팠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하루를 꼬박 아팠다. 그리고 그 밤에 편의점에 가서 산 와인을 끓여서 홀짝홀짝 마셔봤다. 외국에서는 이렇게들 한다고 했다. 알코올도 없는 와인인데 왜 기분이 좋을까? 이상했다. 몸은 열이 나서 후끈후끈하는데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난 후 잠이 들었다. 아프면 아픈데로, 울고 싶으면 울고 싶은데로, 떠들고 싶으면 떠들고 싶은데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데로, 내가 하고 싶은 데로 놔두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는데, 나는 그 일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얼마 전 가족 중 한 명이 힘든 수술로 병실 생활을 할 때였다. 의사는 치료하고 병실에서 먹을 것도 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라도 찾아 하고 싶었다. 

 "필요한 게 뭐야?"

 대답하지 않는 가족을 위해 처음에는 그냥 내가 주고 싶은 것만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음악, 음식. 하지만 그것들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가만히 그 사람의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조용히 그 사람의 마음을 듣기 위해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고 귀를 기울이자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이 들렸다. 청각은 가장 마지막까지 열려 있는 신체의 일부라고 한다. 가장 끝까지 필요한 자세가 바로 경청인 걸까? 진정으로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들어보라는 신의 의도가 아닐까.


  

 나를 사랑하는 일도 아마 듣는 것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쓰기로 했다. 들리지 않는 마음속의 말을 들으려고 말이다. 새하얀 종이 위에 펜으로 글을 쓰다 보면 막혔던 속이 뻥 뚫릴 때가 있다. 때로는 더 막힐 때도 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쓰는 것 자체가 답이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아 막혔구나.'라고 내 마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막힌 내 마음을 단번에 뚫으려고 닦달하지 않는다. 작은 소리를 크게 내라고 윽박지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소리 나는 대로 듣는다. 사랑을 풀어내면 이런 말들이 아닐까.




 성숙한 사랑은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자신도, 타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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