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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osh Apr 26. 2021

신부를 취하는 것은 신랑이나

기뻐할 수 있는 신랑의 친구


2021.01.07 말씀묵상


[요3:29-30]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말씀의 비유가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유는 결혼식의  영광스럽고 즐거운, 축제스러운 장면이 떠올 때문이다. 어느 인류사를 보아도 역사적으로 혼인잔치는  축하받아 마땅한 행사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다. 그러나 그의 가장 친한친구로, 그곳에 혼인을 축하하러  자의 얼굴에도 그에 못지않은 기쁨이 서린다.


결혼식을 축하하면서 자기가 신랑이나 신부보다  주목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없다. 축하해주고나서, 그들이 아름답게 식을 치르는 것을 보는것만으로 배가부른 기분일것이므로. 그보다  좋을순 없는 기쁨을 누릴것이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삶이란 과연 이와 같다는 세례요한의 비유가 탁월하다고 느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삶에서도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결혼식은  순간이지만, 우리는  오래산다. 수십년 동안, 내가  삶의 주인이 아닌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 하나님은 나의 삶을 축복하시고, 나를 쓰신다는 점에서, 물론  거룩한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이기는 하다.


예수님이 주인공이시긴하지만, 내가 완벽한 들러리는 아니다.  세상을 만드신 이유도,  아들을 보내신 이유도 결국엔 사랑주고 사랑받는 대상으로  인류를, 나를 택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 2인칭이 된다는 소리다. 그러면  말씀의 결정적인 가르침은 무엇일까.


조금 어렵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게 익숙한 세계관은, 나의 삶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삶을 주관하시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신다는 생각은   없다. 예수님이  육체에 온전히 들어오신다면, 나는 매일매일 이렇게 몸부림치면서 살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한심한 자기자신의 모습을 이겨내려 보이지 않는 싸움을 치열하게 했다


.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실패할까봐. 실패할까봐. 내가 예수님을 진정 믿고 의지하고 예수님이  삶의 주인되시기에 내가 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이렇게 몸부림치지 않을것이다.


물론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열심히 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충분히 열심히 사는  같지 않아서  힘들다. 충분히 실력을 쌓고 있지 않는  같아서, 돈도 없고, 가진  없어서  결핍이 나를 계속해서 삶의 현실로 몰아붙여가도록 만든다.


세례요한에게 배운다. 말씀에서 배운다. 즐거운 축제와 같은 신앙의 태도를 갖는 것. 나의 구주 예수님께 내 좋은 모든 영광들을 올려드리는 것으로 나는 기뻐하는 그삶. 오늘처럼 내마음대로 되는 일들이 많이 없는 그런 지질한 밑바닥에서도 그를 꿈꾸며 산다. 성령을 구한다.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믿으며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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