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2020.05.17 말씀묵상
[사56:4-7]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6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사람들의 삶은 한 번 정해진 선택을 돌이키기 어려웠다. 불임하는 자, 성기능이 불구인 자, 가난한 자, 나병이 있는 자, 과부가 된 자 등등. 그들은 살 소망이 끊어져 평생을 궁핍과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속에 갇혀 살아가야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구원의 보혈이 허락되었다. 만인제사장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던 성소의 휘장은 찢어졌고, 예수님의 보혈의 제사가 나의 죄를 사하는 은혜를 허락하셨다. 죽음 속에, 수치 속에 살아가던 영혼이 다시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중에 은혜를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희망이 생긴 것이다.
내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내가 여전히 바랄 수 있는, 끊어지지 않는 소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너무 중요하다. 비관과 좌절밖에 남지 않은 인생은 죽어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린 어쩌면 모두가 그 희망 하나를 보며 산다. 무엇인지 몰라도 막연하게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래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결국 몸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활력이 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세상소망이 끊어지더라도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은자에게는 살 소망이 있다고. 하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무너지는 법이없다. 그분의 회수되지 않는 말씀의 언약이 나를 지키고 나를 보호하신다. 그분의 인도를 따라 나는 나아갈 뿐이다.
최근에 나를 둘러싼 불안은, 현실적인 잣대에서 나를 보며 파생된 것이다. 그전에 나는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절대 망할 것 같지가 않았다. 경제적 자유를 얻고, 명예도 얻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보살피며 그렇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는 나는 그렇지 않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결정적으로는 내가 나에 대해 의심하면서 문제가 심화된다. 나는 너무 이상주의적인 사람이다. 그건 분명하다. 그런 사실이 와닿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알던 세계관과 내가 나아가는 길이 실제의 그것과는 아주 많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과 공포가 나를 둘러쌌다. 비단 나 뿐만 그럴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왜 삶은 내가 살고싶은대로, 내 행복을 내가 추구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끊임없이 나를 검열해봐야하는 건가. 내 기준이 아닌 타인과 세상이 말하는 기준으로. 힘들었다.
지금은 그조차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안주하지 않고 현실에 발디딛은 꿈을 완성할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니까. 그리고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낯설고 어려운 감각이지만, 나에게는 소망이 있다. 나에게는 사명이 있다. 내 삶의 의미는, 내 삶의 소망은 땅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승리이자 현실회피가 아니다. 내가 불안함에 주님앞에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고민할 필요 없는 삶, 풍족한 삶 속에서는 세상이 고통하는 신음소리에 귀기울이기 어렵다.
나는 불안하고, 똑같이 불안한 나의 여러 친구들을 알고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이 이렇게 힘들겠구나 한다. 고통을 잊은 도시를 살아가는 것은 고통스럽다. 많은 이들에게 긍휼이 필요하다. 보혈의 안식이 필요하다. 내가 너무 행복하고, 내가 너무 누리면, 좋겠지만 그 시간에 누군가는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않는, 귀에 들리지 않는 많은 이들의 모습과 소리가 스쳐간다. 좁은 방 이불을 뒤집어쓰고 신음하는 소리들. 그들을 생각한다. 그들을 기억한다. 기도한다. 살 소망이 있다고.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예수그리스도의 위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