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하는 고백

기쁘게 받으시는 당신에게 감사를

by Daniel Josh


2020.07.03 말씀묵상
[왕하2:8-9]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옛날에 이 구절을 봤을 땐, 그저 엘리사가 엘리야의 능력을 보고 감탄해 그것을 두배나 자신에게 주기를 바라는 줄 알았다. 청출어람의 욕심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할 때 느낀 것은, 앞선 영적 선배의 능력과 사명을 기꺼이 이어받겠다는 의지, 영적 후사가 되겠다는 의지에 대한 것이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다니며 배웠다. 물론 겉으로 나타나는 이적과 표상들을 보면서 마음을 빼앗긴 것일 수도있다. 사명을 감당한다는 게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르고. 예수님을 따랐던 열두 제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 마디로 이 영향력있는 지도자를 따라가면 내가 뭐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막연한 믿음에 따라 움직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 모두 흩어졌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건, 엘리사는 자신이 엘리야의 뒤를 잇는, 아니 그 갑절의 능력과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선언해버렸다. 하나님은 이런 고백들을 절대 흘려듣지 않으신다. 정말 두려움과 부담으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이 대목이다. 나의 동기와 상관없이, 내가 현재 어떤 능력을 가진 존재인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나의 고백을 받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것은 절대 실패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모습에서 무엇을 봤든, 엘리사 자신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그 고백을 주님은 받으셨고 엘리야가 승천하고나서 하나님은 엘리사와 함께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사명의 길은, 인자의 길은 고난과 수치와 모욕을 견뎌내고 좁은 문으로 향하는 길이다. 내가 기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든, 내 인성이 바르든 그렇지 못하든, 나의 능력이 어디에 미치지 못하든 상관 없이, 나는 주님앞에 기도했다. 내가 주님앞에 쓰임받고 죽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그 고백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백을 할때에 나에게 부어지는 감동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주님의 거룩한 사명과 주님의 부르심 앞에 인간의 개개인적 특질은 어떤 이유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이 크신 하나님 앞에 너무나 보잘 것 없고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이 깨달아지고 있는 지금, “성령의 능력이 나에게 갑절이나 있게하소서” 라는 말을 엘리사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게 느껴진다. 사기를 당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딱 그렇다. 문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당장 눈 앞의 것을 취하려고 계약서에 싸인을 한다. 그리고 신세를 조진다. 모르니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햄릿은 우유부단해서 망설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알았기 때문에 그는 고뇌할 수 밖에 없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고 외친 것이다.

나의 앞날을 나도 잘 모른다. 다만 희망사항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명의 무게, 십자가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것은 잘 알겠다. 이제 나는 하나님 앞에 고백할 말을 찾는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겠다며, 주님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며 고백했지만 주님은 진실을 이미 알고 계셨다. 연약한 그의 제자들이 주님을 다 떠나갈 것이라는 걸.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안되는 그 연약함을 성령이 도우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일하시는 방식이다. 주님은 그 고백을 기쁘게 받으셨을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선물이지만 마음만은 기쁘게 받는 것 처럼.

결국 우리가, 아니 내가 할 수있는 것이라곤 그런 것에 불과하다. 아무 능력도, 쓸모도 주님앞에서는 명함내밀만한 것이 없음에도 고백하는 것이다. 나를 사용하소서. 나에게 성령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주님의 선한 일을 감당하게 하소서. 나의 이웃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게 하소서. 주님의 복음으로 수많은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아나도록 만들게 하소서. 어차피 나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 능력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 나를 통해 이루실 일도 결국 주님께서 만들어가시는 것.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처럼 주님을 따라간다.

어찌보면 내가 이토록 무지함에 감사하다. 주님이 나를 쓰실 수 있도록 나는 나의 마음을 주님앞에 드리는 것 밖에 할수 없다. 그 이후의 일들은 주님 앞에 계속해 엎드리며, 그 다음에 생각해도 다 알 수 없는 문제들. 결혼하기 전에 파혼할 걱정을 하는 이가 과연 있는가. 엘리사는 과연 자신 앞에 닥칠 모든 험난한 과정의 결말들을 다 꿰뚫어보고 갑절이나 자신에게 능력을 베풀길 고백했을까. 나의 무용한 고백을 사용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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