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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Jul 03. 2022

대학에서 야간 자율학습이라니!!

심지어 야자도 한다.

라떼는 고등학교 생활이 평일 7시 등교~10시 하교, 토요일, 일요일 7시 등교~6시 하교였다. 3년 내내 학교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 5일인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스케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학원 제외 스케줄로 평가할 때 말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생활에 어느 정도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 합격을 하고 가족과 함께 가본 학교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넓지 않은 캠퍼스.(심지어 고등학교가 더 넓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유서 깊은 학교여서 드라마 촬영도 한 그런 멋진 학교였다) 주변에 변변치 않은 식당과 상가들. 

집에 와서 한동안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게 누가 캠퍼스 한번 안가보고 대학을 선택하래.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학을 가서 알았다. 전문대학은 시간표를 짤 수 없다는 것을. 

수강신청을 할 수 없고 고등학교 때와 똑같이 시간표를 받아서 생활해야 했다. 

오. 이런 젠장이었다. 수강신청이 로망이었던 것이다. 4년제 대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수강신청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얼마나 부러웠는지 지금도 생각이 난다. 한번 도와주고 배앓이 꼴려서 두 번째는 못 도와주겠다고 거절했더란다. 간장종지 같은 나의 그릇. 


어쩌나 저쩌나 대학생활이 이어졌다. 치위생사는 과의 특성답게 치과의사, 치과위생사, 간호사가 교수님인 경우가 많다. 모든 대학이 그렇겠지만 유독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교수님이 계셨다.

그분은 치과의사이면서 교수님을 하고 있는 분이셨고 그 수업시간에는  뒷자리에 앉는 순간 그 수업을 무사히 마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에 교실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수업시간의 긴장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후일담으로 들어보니 그 교수님은 의사로서도 꽤 예민한 스타일이라고 들었다. 진료 중에 손을 다치면 손가락을 들고 가만히 계신단다. 밴드를 붙여줄 때까지.

나중에 듣고 기겁을 했지만 충분히 그러실 수 있는 분 같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수업시간의 긴장도와 가르침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훌륭했던 것 같다.


치과위생사는 치위생과를 3년 다니고 나서 국가고시를 봐서 "치과위생사"라는 '면허'를 따야 일을 할 수 있는 직종이었다. 다시 한번의 수능이 있는 것이다.

국가고시는 실기와 필기를 따로따로 합격해야 하고 각 과목마다 과락을 하면 탈락하는 책 30권 정도를 공부하고 나서 볼 수 있는 그런 시험이었다.

학교에서는 야자가 생겼고, 밤 8시~9시까지 실습과 필기에 대비한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해가 지고 나오는 집에 돌아갈 때 '아~이건 고등학교였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 돈 주고 사 먹고 사복 입고 다니는 학비 비싼 고등학교.


나중에 알고 보니 4년대 가면 이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3년 안에 힘들게 배우고 시험 보고 취업하는 오직 공부와 취업을 위한 치위생과. 이래서 알아보고 해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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