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식-2020 한식문화
쑥국에 우러난 엄마의 진한 그리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봄이 되면 따사로운 햇살이 살며시 우리 집 앞마당 화단에 찾아들어와 잠자던 꽃들을 하나둘씩 깨우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곧 마법에 걸린 듯 주위는 온통 오색빛깔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곤 하는데……. 집안을 온통 진한 향으로 물들이는 샛노란 금잔화가 화단 전체를 화려하게 수놓고, 한편에는 소박한 감나무 한 그루와 신비스러운 보랏빛을 뿜어내는 꽃창포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심심할 때 꿀 따 먹는 재미를 주는 선홍빛 샐비어가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있다.
화단 옆 돌로 만든 넙적한 절구 안에는 빨강 금붕어 두 마리가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느라 나의 커다란 시선을 놓친다. 그렇게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하다가 바로 옆 수돗가 사이에 나 있는 계단을 오르면 사방이 훤히 트인 조그마한 장독대에 이른다. 그곳에는 엄마가 손수 지으신 고추장, 간장, 된장을 담은 항아리들이 정겹게 마주 보고 있고, 저기 한쪽 귀퉁이에는 상추와 깻잎을 심은 자그마한 상자텃밭이 한껏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비록 높은 장독대는 아니지만 내려다보는 재미에 자주 올라가곤 했다.
장독대에 서서 주위를 죽 둘러보면 저만치 오른편에는 아기자기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왼편에는 큰 도로가 나 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좀 더 시선을 멀리 두면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작은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은 마치 거북이처럼 보인다고 해서 ‘거북산’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까마득한 그 옛날의 거북 산은 엄마와 함께 했던 나의 소중한 추억의 장소로 남아있다. 아마도 지금은 산이 다 깎이고, 그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6살 때쯤이다. 엄마는 항상 소쿠리를 옆에 끼고 나물을 캐러 거북산에 오르곤 했다. 그때마다 난 소꿉놀이할 때 쓰는 작은 소쿠리를 얼른 챙겨 들고 부랴부랴 엄마를 따라나섰다. 엄마는 가는 길에 나있는 꽃이 옆으로 쓰러져 있기라도 하면 다시 그 꽃을 일으켜 세운 뒤 손으로 흙을 꾹꾹 눌러가며 잘 지탱시켜줬다. 그리고는 매번 거북산을 갈 때마다 행여나 그 꽃이 또 쓰러져 있지는 않을까 늘 관심을 갖곤 했다. 거북 산은 말이 산이지 언덕처럼 생겨서 오르내리기가 그다지 힘들지 않았고, 산꼭대기에 다다르면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기분을 아주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눈을 감고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살며시 눈을 뜨면 드넓게 펼쳐진 푸른 풀밭에는 메뚜기, 여치, 사마귀가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저만치에는 앙증맞은 빨간 산딸기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뿐인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습한 곳에는 여기저기 고사리가 나 있고, 햇빛이 잘 드는 평지에는 온통 쑥 천지였다. 그 당시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던 탓에 엄마는 이렇듯 먹거리가 풍성한 거북산과의 인연을 놓지 못했고, 난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살아있는 자연을 품고 살고 있다.
엄마는 특히 쑥을 좋아했다. 한 손으로 쑥의 잎을 살짝 잡고 칼로 쑥의 뿌리까지 완전히 캐낸 뒤 흙을 탈탈 털어 커다란 소쿠리에 담아냈다. 그렇게 바구니 한가득 쑥이 수북이 쌓여갈 때쯤이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그럼, 엄마와 난 부랴부랴 서둘러 집으로 향하곤 했는데, 그 가는 길도 엄마와 함께여서 그런지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참 이상하다. 벌써 4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너무 생생하다. 거북산에서 내려와 골목 맨 끝집이었던 우리 집으로 향하던 기억이…….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캐온 쑥을 수돗가에서 깨끗하게 씻은 후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한편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동생은 어디에서 넘어졌는지 엉엉 울면서 들어오고, 언니도 동네 친구들이랑 얼마나 실컷 놀았는지 옷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들어왔다. 그새 집안은 아파서 징징거리는 소리, 씻으러 왔다 갔다 하는 소리로 시끌벅적 해졌다. 그 당시엔 안방에 커다란 흑백 TV가 떡 버티고 있던 터라 우리 형제들은 저녁을 먹기 전에 항상 TV 앞에 앉아 만화 프로그램을 보는 게 낙이었다.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천국이 따로 없을 정도로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참 재미에 푹 빠져 있을 즈음, 부엌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쑥국 냄새가 우리들의 허기진 배를 더욱더 요동치게 만들었다. 멸치로 우려낸 멸치육수에 된장을 풀어 구수한 국물을 낸 다음 깨끗하게 씻은 쑥을 넣어 팔팔 끓이면 맛있는 쑥국이 완성된다. 엄마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긴 쑥국과 밥 그리고 콩자반, 김치, 멸치볶음, 김, 마늘종 무침 등의 소박한 밥상이 엄마의 손에 들려 안방으로 들어오는 순간 밥 두 그릇은 그냥 뚝딱 해치운다. 밥이 조금 모자랐을까? 엄마 밥은 밥통을 아무리 싹싹 긁어도 반 그릇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엄마 밥까지 죄다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 당시 엄마는 배가 별로 안 고프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 정작 당신의 배는 주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어디에선가 구수한 쑥국 냄새가 풍겨오기라도 하면 그 옛날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엄마와 바구니 끼고 거북산에 가던 길, 해가 질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서 쑥을 캐던 일,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향하던 길, 엄마의 손맛이 듬뿍 담긴 쑥국이 놓인 소박한 밥상, “하하 호호” 웃으며 밥 두 그릇을 뚝딱 비우던 그날, 우리를 향한 엄마의 따뜻한 미소……. 이렇듯 엄마의 사랑이 담긴 구수한 쑥국은 내가 이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 엄마의 진한 그리움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