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른 아침, 아이들 등굣길이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중학교 여학생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른 채 쩔쩔 매고 있었다. 그 경비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여학생은 큰소리로 아저씨를 다그치고 있었다. 나와의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었기에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 당시 난 6살, 8살 난 아이들의 엄마였고, 나이가 지긋이 든 경비 아저씨를 마치 동생 혼내 듯한 그 여학생의 행동이 그저 무례할 따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여학생은 날카로운 가시를 치켜세운 채 사춘기의 극을 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7년 후, 그 엄청난 사춘기의 위력을 온몸으로 경험했던 난 그 당시 경비 아저씨가 왜 그 여학생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보통 아이들의 사춘기는 폐쇄적인 공간, 즉 집에서 그 모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폭언이 오고 간다든지, 방 벽이 움푹 들어간다든지, 방 문짝이 헐거워진다든지, 바닥 이곳저곳이 파인다든지, 그 무엇 하나 성한 게 없을 정도로 요즘 사춘기의 위력은 더욱더 대단하다. 거기에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가 한몫 톡톡히 했으리라.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담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전혀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여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했었고, 아니면 ‘공부를 너무 많이 시켜서?’라는 질문도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해왔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방치한 것은 전혀 아니었고……. 다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욕심은 좀 과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분에 있어서도 다른 엄마들에 비해 정보력도 약했고, 학원도 그다지 많이 보내지 않았다. 그냥 내 주관대로 밀어붙인 부분은 있었다.
여하튼 사춘기에 대한 답을 전혀 찾을 수 없었기에 나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혔으니까. 그래서 어머니 합창단에 입단해 음악으로써 마음을 치유해 나가기 시작했고, 나름 영어 공부도 하면서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라는 사람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아이들의 엄마 중간 지점에서 아이를 향한 집착을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나를 옭아맸던 구속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았다. 마음을 내려놓겠다고 수차례 선언을 했지만 그건 말뿐이었다. 다시 또 아이들에 대한 집착으로 마음이 괴로웠고, 결국 바닥까지 오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그때는 나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내가 한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엄마만 보면 짜증이 나고, 나 스스로도 통제가 잘 안 되더라고요.”
허탈했다, 난 죽도록 힘들었는데.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이 났고, 그런 감정을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었다는 단순한 말 한마디. 그렇게 난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쓰라린 인내를 품은 채 서서히 엄마다운 엄마의 모습으로 변해 갔다. 그래서일까? 문득문득 이 세상에 없는 나의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아이가 한창 사춘기로 방황할 때, 난 나의 엄마를 생각하며 동시에 사춘기 시절 나의 모습도 다시 한번 떠올려 봤다. 엄마와 나 그리고 딸아이! 우리네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계속해서 돌고 도는.
“나도 좀 살자.”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사춘기로 방황할 때 엄마가 나를 향해 내던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말이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다. 그 당시 사춘기와 마주 선 엄마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싶다. 사실 ‘엄마’라는 존재는 자식들이 생각하기에 그저 만만한 존재인 것 같다. 집안에서는 품위고 뭐고 다 집어던진 채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모습으로만 아이들에게 비치기 때문일 게다. 오히려 품위 있게 집안일을 하다 보면 가족들은 더 숨이 막히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의 사춘기! 이제는 그냥 쉬쉬하면서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그건 아이들의 잘못도, 엄마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아이들마다 각각 그 시기는 다르겠지만 호르몬과 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불균형이 극에 달해서 오는 극히 자연스러운 변화다. 사실 나도 큰아이의 사춘기를 겪어 보니 이제야 깨닫는 부분이다. 그 전에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고, 괴로움에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난 솔직한 성격 탓에 주변 엄마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했고, 그 과정에서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었구나!’ 하는 커다란 위안을 얻기도 했다.
“아이고! 그렇지도 않아요. 왜 교회에 가면 기도실이 있잖아요? 그곳에 가면 불을 다 끈 상태에서 마음속에 있는 괴로움을 다 쏟아내라고 하거든요. 처음엔 정말 조용해요. 그러다가 한 엄마가 속에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기 시작하면서 통곡을 하면 여기저기에서 아이들 사춘기로 힘들어하던 엄마들이 같이 통곡을 하면서 기도실이 온통 울음바다로 변하는 것을 봤어요.”
며칠 전, 밤늦게 지인을 만나 술 한잔 하면서 “나는 아이 사춘기를 아주 호되게 겪었는데, 다른 엄마들은 괜찮은가 봐요. 아니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면서 그냥 말을 안 하는 것인지…….”라고 얘기했더니 곧바로 지인이 위와 같은 얘기를 해준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의 사춘기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속으로 삭이면서 지내는 엄마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난 정말 힘든 시기에 함께 공감할 수 있었던 지인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그 시기를 잘 넘겨온 것 같다.
내 주변 엄마들 얘기를 들어 보면 사춘기 아이와 일이 벌어지는 순간, 하나같이 집에 달려있는 문이란 문은 다 닫아버린다고 한다. 혹여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그 끔찍한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갈까 봐. 게다가 가장 먼저 화장실 문부터 닫으라는 정보는 덤이다. 모든 방은 거실로 통하고, 거실에서의 소음은 거실 내 화장실 환풍기를 타고 곧바로 위층으로 직방이다. 솔직히 사춘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우리 집 현관문을 열 때 다소 눈치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 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수 있겠는가! 엄마도 사람인데…….
어제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러 우리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딱 걸렸다. 이미 결혼시킨 두 남매를 둔 나이가 지긋한 옆집 아주머니가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 나도 머쓱하게 인사를 하며 승강기 안으로 향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의 세 여인, 그때 난 미리 선수를 쳤다.
“그나저나 집이 항상 조용한 것 같아요. 우리 집은 중학생 둘을 키우느라 거의 전쟁터인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주머니는 1층에서 내렸고, 바로 승강기 문이 닫히는 순간, 우리를 향해 한마디 내던졌다.
“다 그러면서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