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결코 단순하게 웃고 넘길 문제는 아니었다. 흔히들 중2병, 북한이 중2 때문에 남한에 못 쳐들어온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그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 정도로 사춘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정말로 반듯했고, 따뜻했고, 든든했던 아이가 어느 순간 급격하게 돌변하면서 그동안의 행복했던 시절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야말로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고,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끝날 줄 알았는데, 한 순간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에게 돋친 가시는 점점 더 뾰족해졌고, 접근조차 힘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접근을 하려고 하면 난 온통 상처투성이로 만신창이가 다 되어버렸다.
보통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는 것 같다.”라고 푸념한다. 정말 나도 그랬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아무런 희망도,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난 한동안 어두운 터널 안에서 그냥 멍한 상태로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현실은 터널 안이었지만 마음만은 간절히 행복해지고 싶었다.
나 스스로 어둠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영원히 밝은 빛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암담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깨우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힘든 일도 다 극복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우선 아이를 향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서서히 나를 찾고자 노력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누구도 나에게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은 바로 엄마인 나였기에 나를 다시 찾는 길은 너무도 외롭고 힘든 여정이었다.
난 아이의 엄마인데, 아이에 대한 관심과 집착을 버려야 된다니……. 그 고통은 뭐랄까! 내 심장을 마치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아니, 도저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극심한 고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조건 마음을 비워야만 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나 자신을 속여 가며 마음을 비운 척했을 뿐 여전히 아이를 향한 집착의 끈은 놓지 못하고 있었다. 늘 아이를 지켜보면서 바른길, 빠른 길을 제시해 주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한 채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그런 숨 막히는 상황이었다.
난 점점 지쳐 갔다. 늘 그렇듯 힘든 하루를 보내고, 좀 더 나아지는 내일을 기대해 보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오늘보다 더 나빠지는 내일을 향한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엄마라는 존재는 무엇으로라도 자신의 마음을 비워 놓지 않으면 아이의 사춘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런 아이를 받아주지 못한 채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난 내 아이를 버려야만 했다. 아이가 깨닫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관심을 끈 채 나를 찾는 일에 집중하면서 그냥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합창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 하나하나에 내 마음을 실어 그동안 쌓인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서서히 비워나갔다.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아이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그 사이에 내가 지치지 않도록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음악이었다. 음악을 통한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동안 온몸으로 받았던 아이의 사춘기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무뎌지게 만들어줬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행복해지면 남들이 생각하는 불행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사춘기! 다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 엄청난 위력으로 다가왔다가 또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처음 아이의 사춘기를 마주할 때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무뎌지면서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첫째 아이의 방문은 활짝 열렸고, 반대로 둘째 아이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는 중이다. 하지만 괜찮다, 닫거나 말거나. 어느 순간, 답답해서 스스로 문을 열 때가 분명히 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지금 아이의 사춘기로 고통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 수 있는 엄마들과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나만 이렇게 힘든가?’ 하는 엄마들의 힘든 마음을 내 경험을 통해 위로해 주고 싶었고, 언젠가는 다시 사랑하는 엄마한테 돌아온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다. 물론 엄마와 아이와의 정서적 유대감이 이미 형성된 상태, 즉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먼저 던져보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책의 소재가 된 나의 첫째 딸 OO이는 초판 1쇄가 막 출판되어 서점에서 잉크 냄새가 폴폴 풍길 무렵이면 **외고 학생이 되어 교문으로 힘차게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사춘기라는 거친 폭풍우를 굳세게 이겨내고 더욱 강건한 모습으로 새로운 세상 앞에 우뚝 선 내 딸에게 먼저 이 책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 딸 정말 장하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