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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May 05. 2020

사춘기 엄마 처방전

3-9 나는 어떤 부류의 엄마인가?

 “There was so mush noise that Houndsley could not hear what Wagster was saying now. 하운슬리는 소음이 너무 심해서 웩스털이 지금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다. But he could tell by the way Catina tilted her head and laughed that she found Cousin Wagster charming. 하지만 그는 카티나가 그녀의 머리를 기울이고 웃는 걸 보고서 사촌 웩스털의 매력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기 맨 밑에 문장에서 ‘that’의 용법은 목적격 that인가요?”

 “그렇죠.”

 “문장이 너무 길어서 해석하기가 좀 난해하긴 하더라고요.”

 “이 교재, 난이도가 꽤 있는 편이에요.”

 “나도 해석하는데 어렵더라고요.”

 “그럼, 맨 위의 문장에서 ‘so∼that’은 ‘너무 ∼해서 ∼할 수 없다’라는 뜻인가요?”

 “네, 맞아요.”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하운슬리는 소음이 너무 심해서 웩스털이 지금 말하고 있었던 것을 들을 수 없었다.’로 해석이 되는 거겠죠.”


 나는 1주일에 한 번 영어 스터디에 간다. 마음 맞는 엄마들과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즐겁게 영어 스터디를 하고 더불어 맛있는 밥도 먹고 온다. 항상 영어 스터디 멤버들이 강조하는 것은 밥이다. 그러니까 영어를 열심히 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밥 먹는 재미가 더 큰 것이다. 게다가 스트레스 해소용 폭풍 수다는 덤이다. 사실 첫째 아이의 사춘기로 인해 돌파구를 찾다가 합창과 동시에 영어 스터디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3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데, 가랑비에 옷 젖듯 영어 실력도 서서히 늘고 있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 **초등학교 어머니 합창단에 간다. 합창을 하기 전에는 노래방에서 인기 가요를 부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합창을 하고부터는 주로 가곡을 부르는데, 가사와 곡이 이렇듯 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킬지 몰랐다. 게다가 합창 멤버들이 다들 음악으로 뭉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마음 또한 여유롭고 따뜻했다. 여하튼 아름답고 잔잔한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면 그동안 쌓였던 미움, 분노 같은 악감정이 싹 씻겨 내려가는 듯 편안해졌다.


박인걸 작사/이현절 작곡의 <그 해 여름밤>이다.


♪쏟아지는 별빛을 물결에 싣고 밤새도록 지줄 대며 흐른 시냇물아 반딧불이 깜박이던 한 여름밤 불협화음에도 정겹던 풀벌레 노래 소나무 숲 방금 지나온 바람 가슴 닦아내는 고마운 손∼♬  


 아이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어느 순간 집착으로 변해 가고, 그 집착이 과도한 욕심을 낳아 결국 내 마음이 썩어 문드러질 때 나는 진정한 나를 찾아갔다. 노래를 부르면서 내 마음을 비워 나갔고, 영어를 하면서 스스로를 개발해 나갔다. 그러면서 아이 육아와 교육까지 병행했다. 일단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아이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예전과 달리 상처가 덜했다. 아마도 아이를 향한 과도한 사랑이 나를 향한 사랑으로도 분산되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를 무척 사랑했다. 왜냐하면 내가 목표한 바를 항상 이루어 나갔고, 약속에 대해선 미생지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철저하게 지켜나갔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거나 피해를 입힌 일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내 엄마한테는 많은 상처를 줬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를 빌려 하늘에 계신 엄마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여하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을 믿었고, 그 믿음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존감으로 발전해 나갔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내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얘기는 달라졌다.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아무개 엄마’라는 호칭으로 살다 보니 이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아이가 되었고, 엄마인 나는 그 주인공 옆에서 뒷바라지를 해주는 그야말로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의 그림자로만 살아왔던 난 더욱더 아이에게 집착하게 되었고, 결국 그 집착은 아이가 등을 돌리는 무서운 사춘기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은 아이의 사춘기도 거의 사라지고, 난 나름대로 나의 삶을 즐기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공부는 아이가 하는 것이지 절대로 엄마의 힘으로 이끄는 게 아니다. 다만 아이가 어떤 계기가 되어서 공부할 의지가 생기면 다행이지만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로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냥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 주는 수밖에.


 “엄마, 엑소의 시우민인데, 너무 예쁘지 않아요?”

 “어디 보자. 와우! 정말 예쁘게 나왔네. 딱 기생오라비 같다니까.”

 “시우민은 정말 연예인 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 같아요. 언젠가 방송에 한 번 나온 적이 있었는데, 본인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더라고요. 매우 깔끔한 것 같았어요.”

 “딱 엄마네.”

 “엄마, 또 시작이야.”

 “이제 다 왔다. 잘 다녀오고, 나중에 보자.”

 “네.”


 오늘도 난 어김없이 아이를 옆에 태우고, 신나게 엑소 얘기를 하면서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이다. 매일 같이 아이를 학원에 실어 나르다 보니 이제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다 되어버렸다. 물론 우리 동네에서만 말이다.


 사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 수 있는 우리네 인생에서 내 아이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싶다. 비록 아이가 어려서 대화가 통하지 않고, 답답할지라도 ‘엄마’라는 존재 안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깊이만큼 수많은 경험을 통한 지혜의 보물이 숨어 있기에 어느 순간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희망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 아이를 사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존재는 나 자신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내 아이를 향한 사랑도 결국 집착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차고 넘쳐난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애착인지 집착인지 깨달을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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