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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May 04. 2020

사춘기 엄마 처방전

3-8 갓난아기를 안고 문화센터에 가는 엄마들

 배 속에서 꿈틀꿈틀 아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뭘 알아듣기라도 해서 머리를 끄덕거린 건지……. 한창 독서 토론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난 마치 배 속에 있는 아이한테까지도 수업 내용이 전달됐나 싶어 왠지 뿌듯함을 느꼈다. 결혼 후 그동안 몸담았던 작가 생활을 잠시 접고, 아이를 낳은 후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내 아이를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독서토론 논술이 ‘딱’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수업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겸사겸사 배 속에 있는 아기한테도 이 수업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 당시 아기를 임신한 많은 엄마들이 ‘태교 교육’이라고 해서 엄마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태아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정보를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그중 나도 딱히 확신은 없었지만 그 흐름에 덩달아 편승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배 속의 아기와 난 열심히 독서토론 수업을 받으러 다녔고, 드디어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냈다. 그러니까 내 배속의 아기도 동시에 자격증을 딴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아파트 내 몇몇 젊은 엄마들이 아기 띠에 아기를 안고 어딘가 가려는 듯 마트 앞에 뭉쳐 있었다.   


 “어머! 아기가 많이 컸네요. 지금 생후 몇 개월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12개월 됐어요.”

 “정말 예쁘게 생겼네요. 공주님이죠?”

 “아니, 아들이에요.”

 “앗! 그래요? 그런데 정말 예쁘게 생겼네요.”

 “남들도 다 그러더라고요.”

 “아이고! 아기들이 다 그만그만하네요.”

 “네, 아직 다들 1년이 채 안 됐어요.”

 “그런데, 다들 어딜 가시나 봐요?”

 “네, 문화센터에 가려고요.”

 “아하! 그래서 이렇게 모여 있었군요. 그럼, 잘 다녀와요.”


 첫째 아이가 배 속 세상에서 인간 세상으로 나온 지 6년이 되어가는 그 당시에도 여전히 엄마들은 이제 겨우 갓 태어난 아기들과 함께 조기 교육의 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 보면 너무 유난스럽다는 사람들과 그래도 효과가 있다는 사람들 두 의견으로 갈린다. 솔직히 돌이켜 보건대, 태교 영어니 조기 영어니 하는 것이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난 예전 독서토론 교육을 받을 때만 아기가 배 속에 있었을 뿐 그 이후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실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오면서 만난 엄마들을 통해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찌감치 태교 영어를 시킨 아이, 조기 영어를 시킨 아이, 영어 유치원에 보낸 아이,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영어를 시킨 아이 등 네 부류를 놓고 봤을 때 먼 훗날 결과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중학교 이후부터는 아이의 의지에 따라서 능력의 차이가 나타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 갔다 학원 갔다’를 반복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 입장에서도 숨이 ‘턱’ 하고 막힐 지경이다. 그렇다고 남들 다 보내는 학원 내 아이만 안 보낼 수 없는 입장이다. 중학교 이후부터는 뒤처지는 순간 따라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게 지금의 현 교육이다. 그러니 적어도 초등학교 이전까지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함께 하면서 유대 관계를 형성해 놓는 게 좋을 듯싶다.       


내 집이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라는

인상을 어린이에게 줄 수 있는 어버이는 훌륭한 부모이다.

어린이가 자기 집을 따뜻한 곳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잘못이며, 부모로서 부족함이 있다는 증거이다.


-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 -


방 안에서 자기 아이들을 위해 전기 기차를 매만지며

삼십 분 이상을 허비할 수 있는 남자는 어떤 남자이든

사실상 약한 인간이 아니다.


- 스트라비스키 -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건대, 유년 시절의 어린아이들에게는 학습적인 것보다는 부모와의 정서적 유대감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그런 애착 관계가 훗날 아이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어 공부하는 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준에 맞지 않는 학습을 강요하면 결국 아이에게 과부하가 걸려 정작 공부할 시기에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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