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 잔잔한 호수, 그 호수 안에 여유롭게 떠 있는 백조의 모습. 우리는 흔히 여행을 가서든, 공원에 가서든 동물원에 가서든 이러한 광경을 제법 많이 봐 왔다. 나 또한 이 같은 백조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여유를 찾기도 하고, 때론 그 편안한 모습에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백조가 떠 있는 물밑 발을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 게다. 그 물밑 세상은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물 위의 여유로운 백조의 모습과 완전히 상반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는 백조의 모습, 그것은 인간 세상과 별 다를 바가 없다.
무슨 일이든 간에 여유를 찾으려면 그 이면의 부지런함은 필수인 것 같다. 그렇다고 여유와 게으름을 같은 맥락으로 보면 안 된다. 나도 어렸을 때는 여유와 게으름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공부를 무척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학교에서는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오히려 노는 모습과 장난하는 모습만 보였다. 그래서 그 당시 난 ‘저 친구는 볼 때마다 놀기만 하는데 왜 이렇게 공부를 잘하지?’ 하며 몹시 의아해했다.
“아무개야, 저 애는 맨날 노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 거야? 시험만 봤다 하면 거의 100점이니 말이야.”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튼 너무 부러워.”
“사실 나도 그래. 죽도록 공부해 봤자 100점 맞기가 어디 쉽냐고.”
“얘들아, 너희들 그거 모르는구나. 저 아이는 수업 시간에 눈이 초롱초롱해. 그리고 전혀 딴짓 안 해. 우리가 볼 때는 그저 놀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업 시간에 보면 집중하는 모습이 남달라. 게다가 집에서도 열심히 하니까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지.”
“그래, 네 말이 맞다.”
반면 또 이런 친구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 늘 자리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아이가 있었다. 언젠가 그 아이 뒤에 앉았는데, 정말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많이 닳아 있었다. 아마도 밑줄을 긋고 또 그으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성적은 거의 하위권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안쓰럽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두 친구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전자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게을러 보였을지라도 그 이면에는 부지런함이 있었고, 후자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부지런하게 보였을지라도 그 이면에는 게으름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게으른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도 엄마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금세 티가 나기 마련이다. 첫째 아이는 내가 해준 만큼 그대로 나타났다. 공부 실력, 외모, 옷매무새, 습관, 인성, 가정환경, 건강, 그 밖의 모든 실력 등등 내가 제대로 관심을 써주지 못하거나 발 빠르게 움직여 주지 못했을 때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나타나곤 했다.
내가 둘째 아이를 낳으러 가던 날이었다. 그때도 첫째 아이를 낳았던 산부인과와 그 병원 내에 있는 산후조리원을 예약해 두었다. 기간은 총 2주였다. 그래서 미리 첫째 아이를 맡아줄 시어머니께 데려다주고 왔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낳은 지 이틀 째, 첫째 아이가 병원에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뽀얗고 예쁜 얼굴에 뭔가가 잔뜩 나 있었고, 입술에도 염증이 나 있었다. 순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코끝이 시큰했다. 첫째 아이는 엄마인 나와 떨어져 있었던 게 처음이었고, 이로 인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 다시는 아이와 떨어져 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이가 유치원을 갈 때든 초등학교를 갈 때든 항상 머리를 매만져 주었다.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서 묶은 다음 리본 끈으로 예쁘게 마무리를 해주고, 앞머리는 흘러내리지 않도록 예쁜 핀으로 깔끔하게 고정시켜 주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인지라 머리가 산발이 된 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물론 아이가 나랑 같이 있을 때는 수시로 머리를 매만져 주었기 때문에 단정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옷매무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제아무리 예쁜 옷도 금세 추레해졌기 때문에 아이를 볼 때마다 항상 발 빠르게 옷매무새, 머리 스타일 등에 신경을 썼다.
아이의 건강 문제에 있어서도 나의 부지런함이 큰 몫을 했다. 가끔 몸이 아파서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 줄 때는 아이도 곧 따라서 아팠다. 반면 아이가 아팠을 때 정성 들여 간호를 해주고,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이면 금세 회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곧 엄마의 부지런함과 연결이 되는 부분이다. 그 밖에도 아이의 실력은 엄마가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지원을 해주고, 옆에서 꾸준히 봐준 경우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실력 차가 월등히 높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아이의 빛나는 모습 그 이면에는 엄마의 부지런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아이가 사춘기 때는 엄마가 아무리 발 빠르게 움직이고, 부지런해지고 싶어도 그런 엄마를 거부하기 때문에 아이는 자꾸만 물밑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래서 첫째 아이의 경우에도 사춘기가 가장 심하게 왔던 중학교 1학년 때 성적이 제일 좋지 않았다. 그때는 나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아무런 의욕도 없었기에 아이의 성적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 그 백조가 아름답고도 여유로운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물밑에서는 얼마나 많은 발놀림을 해야 하는지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터득한 커다란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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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움의 이면에는 부지런함이 있고, 초조함의 이면에는 게으름이 있다. 이러한 삶의 철학적인 부분을 아이들에게 인식시켜 주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건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이상 깨닫기 힘든 부분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은 그야말로 ‘쇠귀에 경 읽기’다. 내 경우에는 아이가 고등학교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 같은 철학적인 부분을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