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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l 20. 2020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교수의 탈을 쓴 사기꾼

 아우라가 펼쳐진 모습이란 바로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결혼 전,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하는 게 너무 지긋지긋한 나머지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일을 할 때였다. 그 당시 난 일중독이었는지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왠지 초조하고 불안했던 탓에 대필로까지 손을 뻗게 되었다. 대필 작가! 작가 대신 원고를 써주고 원고료를 받는 이름 없는 작가. 그렇게 책을 내고자 하는 어느 모 대학 교수와 그 책의 원고를 대신 써주고자 하는 나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그 첫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분이 개인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강남의 모 오피스텔에서 면접을 본 후 곧바로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그분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환하게 아우라가 펼쳐진 그런 기품 있고, 고급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얀 백발도 아닌, 은은한 회색빛이 감도는 은발에 자신감 넘치는 풍채, 그리고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린 하얀 와이셔츠 차림에 말투 또한 세련되고 차분해서 금세 믿음이 갔다. 게다가 각 공중파 방송 출연에 각 기업 초청 강연까지 나름 꽤 알려진 교수임을 인터넷 정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망설임 없이 곧바로 책 콘셉트를 잡고, 취재, 원고 작업 순으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그 교수는 딱히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고집하지 않았고, 그냥 내가 하는 대로 묵묵히 따라와 줬다. 다만, 취재 대상은 그 교수가 이미 선정해 놓은 기업의 대표로 정해 놓은 상태였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각 기업의 대표들과 취재 일정을 잡아나갔고, 그 일정에 따라 해당 기업에 직접 방문, 회사를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낱낱이 취재했다. 지금까지 취재한 대부분의 대표들은 그들만의 차별화된 전략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품 판매 이후 발생할 수 있는 A/S 서비스다. 그들은 전국적으로 A/S 서비스망을 완벽하게 구축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이는 곧 입소문으로 번져 대량 판매와 영구 판매로 이어진 경우였다. 물론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제품 개발에 있어서나 직원 관리에 있어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분석, 끊임없이 연구해 나감으로써 지금의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희 회사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후 고장이 났을 때도 소비자들의 더 큰 만족을 위해 철저한 A/S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취재 일정도 어느덧 막바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난 다음 취재 대상인 모 기업을 방문하기 위해 아침부터 부랴부랴 서둘렀고, 거리가 꽤 있었던 탓에 겨우겨우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대표는 약속 시간을 한참 지나 느지막이 와서는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오히려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사실 취재 일정을 잡을 때도 담당 부서 측에서 자꾸만 미적거리는 느낌이 있던 터라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취재하러 가는 것 또한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서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그 대표가 나에게 한 마디 내던졌다.


 “그분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아니, 돈을 빌려갔으면 갚아야지. 왜 이렇다 할 아무런 소식이 없냐고요. 기분 나쁘게…….”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런 얘기까지 기자님에게 말씀드리기 좀 뭐하지만……. 기업 발전 기금이니 뭐니 하면서 3000만 원을 빌려갔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고요.”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요. 저는 그분이 책을 낸다고 하시니까 거기에 따른 대필만 해주는 입장이거든요.”

 “기자님께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나 보네요.”

 “…….”


 이상했다. 여하튼 취재는 무사히 마쳤지만 왠지 꺼림칙한 마음에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기에 다시 힘을 내야만 했고, 약속 일정에 맞춰 그다음 취재 대상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또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 대표 역시 돈 문제를 거론하며 교수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이후 취재 대상이었던 몇몇 대표들도 같은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교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일단 모 대학에 전화를 걸어 교수에 대해 물어봤고, 잠시 후 들려오는 소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자신의 대학교에는 그런 교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한번 재차 물었고, 역시나 돌아오는 답변은 “그런 분 저희 학교에 없는데, 무슨 일이시죠?”라는 황당한 반응이었다.


 한동안 묵직한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현실 속의 나는 그 무엇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지?’, ‘바로 신고를 해버릴까!’, ‘그동안 열심히 일한 건 다 물거품이 되는 건가!’, ‘그냥 여기에서 그만둘까!’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 되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는지 한참을 푹 자고 나니 뭔가 방법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내게 주어진 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각 기업 대표들에게 교수에 대한 얘기를 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원고 작업은 원고 작업대로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갔고, 그 사이 각 기업의 대표들은 그 교수에 대한 진실을 거의 다 알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모 대학의 교수는 모 대학의 교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다음은 난 모른다. 이후 바쁘게 살아온 나는 한동안 그 교수를 잊고 있었고, 10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언론에 대대적으로 기사화가 되어 있었다. ‘모 대학 교수를 사칭한 사기꾼’이라고. ‘꼬리가 길면 밟힌다.’라는 우리네 옛 속담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사실 공중파 방송에서조차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속았다는 은 그분이 얼마나 교묘하게 사기를 쳐왔는지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펼쳐진 대학 교수였지만 그 이면에는 대형 사기꾼으로서 기업의 자금을 끊임없이 갈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삶에 있어서 이렇듯 황당한 일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극히 드물다. 난 이 사건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 바로 ‘겉으로 보이는  다가 아니다.’라는 명언이다. 이후로 난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는 절대 범하지 않는다. 세상에 딱히 답은 없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그 사람의 내면과 절대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간에 그 사람에 대해서 섣불리 판단해 버리거나 또 그 판단에 의해서 상대방을 대하는 계산적인 태도는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우라는 스스로의 선입견이 만들어 낸 착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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