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영 Jul 29. 2020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내 마음까지 깨끗하게 쓸어주는 빗자루

 찬란하리만큼 눈이 부셨던 어느 화장한 봄날, 그 친구는 깨끗하게 빤 아기 면 기저귀를 탈탈 털어 빨래건조대에 정성껏 널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긴 숨을 내쉬더니 “깨끗하니 너무 좋다.”라며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친구는 시댁에서 한사코 반대하는 결혼을 한 탓에 하루하루의 삶은 마치 신데렐라와 새엄마의 관계를 보는 듯 위태로웠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 모든 걱정과 근심이 싹 사라지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순수함! 깨끗함! 사실 이런 느낌만큼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게 없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난 이런 느낌을 결혼 이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집안 살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난 아주 완벽한 스타일도 아니다. 집안 구석구석을 먼지 하나 없이 아주 깔끔하게 치우는 스타일이 못 된다. 물론 속 모르는 사람들은 “집, 참 깨끗하다.”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눈에 보이는 것만 깨끗하게 보일 뿐 그저 눈속임일 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쓸고 닦고를 다 제하고 정리 정돈만 잘해도 남들이 말하는 깨끗함의 호사는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결혼 초, 나름 집안을 깨끗하게 한답시고 먼지 떨이개로 숨어있는 뿌연 먼지들까지 죄다 끄집어내어 내 호흡기를 혹사시키고, 묵직한 청소기를 이 방 저 방 끌고 다니면서 바닥을 박박 문지르곤 했다. 그 과정에서 줄이 본체의 뒤꽁무니에 콕 박혀있기라도 하면 있는 힘껏 끄집어 당기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열심히 청소하고 돌아다녔다. 그런 다음 물걸레로 먼지가 수북이 쌓인 물건들을 하나하나 다 닦아내고, 이어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거의 넋 나간 사람처럼 집안 바닥을 온통 다 헤집고 돌아다녔다.


 그래서였을까? 매번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청소에 대한 강박증이 생겨나고, 온몸이 욱신욱신 쑤시면서 저려오기 시작했다. 특히 손목과 무릎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청소에 대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그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 내가 생각하는 깨끗함의 기준을 다시 정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굳이 힘들이지 않고도 깨끗하게 보이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스스로에 대한 만족만 얹으면 된다. 완벽한 깨끗함을 유지하려다가 내 몸과 마음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청소만큼은 꾸준히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요령을 터득하고 싶었다.


 언젠가 같은 아파트 내 지인의 집을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분의 경우, 행주는 물론 수건, 발판, 각종 타월 등은 세균이 잘 번식한다며 수시로 삶아주고, 화장실 안 타일 테두리는 곰팡이 하나 없이 깨끗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문틈이며 집안 구석구석은 갓 분양한 아파트의 내부를 보는 듯 번지르르했다. 그래도 그 집에서 꽤 오래 살았을 텐데 어떻게 한결같이 유지를 할 수 있었는지 몹시 의아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지인은 늘 골골거리면서 약을 달고 살았다. 식탁 앞에 놓인 약, 건강보조제 등이 왜 이렇게 많은지 순간 깜짝 놀랐다. 마치 집안의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약을 먹는 사람처럼.


 나에게 있어서 청소란 눈에 보이는 깨끗함만으로도 내 기분이 좋아지고, 이로 인해 가족들의 온갖 짜증과 미움,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는 커다란 그릇을 만드는 데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완벽한 깨끗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내 몸이 혹사를 당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짜증을 가족들이 받아줘야 하는 존재감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뜩이나 외로운 엄마는 가족들이 다가가기 꺼려지는 그런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엄마.. 엄마.. 양말 어디 있어요?”

 “응, 소파 위에 올려놨잖아.”

 “…….”

 “…….”

 “에잇! 양말에 구멍 났잖아요. 구멍 난 건 제발 버리면 안 돼요?”

 “다른 양말로 줄게.

 “후유! 엄마 때문에 학교 늦었잖아요.”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눈에 넣으면 너무도 아플 것 같은 사춘기를 맞이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뾰족한 가시가 돋치고, 그 가시로 나를 아프게 콕콕 찌른다. 그것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작은 아픔이 아니라 오랜 인내를 요구하는 뼈저린 고통이라고 할까! 사춘기 시기도 요즘 같이 심한 경쟁 사회에 내몰려서 그런지 참으로 날카롭고 길다. 어찌 됐건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아침마다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곤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집안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나는 고요함이 주는 무한한 자유로움 속에서 깊은 심호흡을 시도한다. 그리고는 잠시 후, 빗자루를 꺼내 들고 바닥을 쓸기 시작한다. 먼지, 강아지 털, 머리카락, 과자 부스러기, 흙, 실밥, 정체 모를 그 무언가를 하나하나 쓸어내면서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내 마음속에 쌓인 분노, 원망, 상처, 미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까지 다 끄집어내어 함께 쓸어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마음 한편에 너그러운 공간이 리를 튼다.        


 요즘 새롭게 출시되는 다양한 청소 기기들, 특히 청소를 대신해주는 최첨단 로봇청소기 등도 많이 있지만 난 그 옛날의 정겨운 빗자루가 더 좋다. 늘 내 옆에서 기분 좋은 깨끗함을 선물해주고, 또 내 마음까지도 어루만져주던 그런 소중한 존재다. 어떻게 보면 내 삶에 있어서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하루하루 나를 나답게 해주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빗자루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