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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ug 18. 2020

남녀차별,
과연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으면 다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텐데…….

 늘 화가 나 있었다, 왜 여자만 당하고 살아야 하는지……. 요즘 젊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SNS가 딸아이와 만나는 순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그 분노는 고스란히 엄마인 나에게 전해지곤 했다. 평소 시사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자신만의 SNS를 통해 다양한 소식들을 접하곤 하는데, 한 번은 무슨 내용을 봤는지 씩씩거리며 내 앞에 와서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다 쏟아냈다. 그것도 분이 안 풀리는지 며칠 동안 지속적으로.    


 “엄마, 정말이지 우리나라에서 못 살겠어요. 도대체 이 나라는 왜 성폭행, 성추행 등에 그토록 너그러운 거예요?”

 “또 무슨 일인데 그래.”  

 “유료 회원만 입장할 수 있는 'N번방'이라는 채팅방이 있는데, 거기에서 지금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줄 아세요?”

 “뜬금없이 N번방은 또 뭐야?”

 “가해자인 남자들이 피해자인 여자들을 성 착취한 후 관련 사진들을 올리면서 신상 정보들까지 공유하는 채팅방 커뮤니티예요. 피해자 중에는 9살 여자아이는 물론 갓난아기도 있다는데……. 아마도 가해자는 최소 몇 만에서 최대 몇십만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이지 우리나라에서 여자란 남자들의 성노리개일뿐, 인권 보장이라곤 전혀 안 되고 있다고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한동안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N번방 사건! 물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긴 하지만 이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전, 난 이미 딸아이로부터 이 사건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상태였다. 그렇게 각 공중파 언론에 보도되기 1주일 전부터 난 이미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난 아이의 이 같은 지나친 분노에 오히려 자제하라고 다그쳤고, 이후 내가 아이에게 했던 이러한 행동들이 앞뒤 꽉꽉 막힌 고리타분한 엄마로 낙인찍힐까 하는 민망함으로 다가왔다.


 그 옛날 오프라인 세상이 전부였던 난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바뀌어가는 온라인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어 지금은 오프라인 세상과 온라인 세상을 오가며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딸아이가 분노한 N번방 사건을 통해 이 넓은 세상 속에 또 다른 깊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화산 폭발 이전의 땅속 세상을 보듯 어떤 사건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그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으려면 각종 SNS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면 신문, 방송, 각종 SNS에 모두 관심을 갖고 분석할 필요성이 있다.


 사실 난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에도 남녀 평등주의에 편승하고자 부단히 노력을 했다. 예를 들자면 회사 생활에 있어서는 일의 완벽함을 추구함으로써 남자들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서고자 노력했고, 술자리에 있어서는 화장실에 가서 다 토해내고, 다시 멀쩡하게 앉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인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게다가 다음 날 아침, 가장 먼저 출근하는, 그야말로 무서운 여자 직원이었다. 물론 프리랜서를 선언하기 전까지만 말이다. 사실 그 이후부터는 차별이란 건 모른 채 프리랜서로서 내가 일한 만큼의 대가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는 남녀차별을 부추기는 유교 사상에 반기를 들고 끊임없이 나의 권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부인으로서, 며느리로서, 남편 집안의 일원으로서 느껴지는 소외감, 존재감, 부당함 등 나다움을 억누르려는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쳤다. 우선 제사 부분에 있어서 너무 과도한 형식으로 인해 자칫 가정까지 파괴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리 부부는 서로 합심해서 오랜 세월 동안 투쟁을 해왔다. 그리고 하나하나 줄여나가면서 지금은 형식보다는 의미에 초점을 맞춰 가장 합리적인 방안들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내 주변을 보더라도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서부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시댁을 먼저 가고, 그다음으로 친정을 가곤 했는데, 이제는 반대로 친정을 먼저 가고, 그다음으로 시댁을 가는 가정들이 많이 늘고 있다. 또한 제사 부분에 있어서도 횟수를 줄이고, 그동안 형식적으로 차려왔던 제사 음식보다는 가족들이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심지어는 다들 먹고살기 바쁘니까 명절, 제사 때 굳이 오지 말라는 부모들도 있다.


 권위적인 아빠와 순종적인 엄마? 요즘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마 우리 집 아이들만 보더라도 그런 아빠한테는 말도 섞지 않을 것이고, 또 그런 엄마 역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우리 집 부부의 모습은 그냥 친구 같은 모습이다. 어떤 때는 엄마인 내가 남자 같기도 하고, 반대로 아빠인 남편이 여자 같을 때도 있다. 아이들 역시 부모를 대할 때 눈치를 본다거나 하고 싶은 얘기들을 속에 담아 두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남들이 보면 위계질서가 전혀 없는 우스꽝스러운 가정 분위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가정 분위기는 아이들을 그냥 자유스럽게 키우고 싶은 내 마인드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예전 너무 주눅 들어 살던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게다가 딸아이로 인해 우리 가정 문화가 180도 확 바뀐 부분도 있다. 특히 남녀차별에 분노를 느끼는 딸아이 때문에 우리 가정은 ‘하늘 같은 남편’이니, ‘우리 아들’이니 하는 남성 우월주의 말들은 감히 꺼낼 수조차 없다. 남편, 부인, 딸, 아들, 아빠, 엄마, 누나, 동생……. 모두 다 평등하다. 그래서일까? 그 평등함 속에서 누리는 자유로움 때문인지 다들 집을 너무도 사랑한다. 그래서 가끔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나로서는 오히려 구속이 되기도 한다.


 여하튼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엄청난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남녀차별 때문에 소외당하는 여자들에게 평등이라는 희망의 물꼬를 터주고, 여기서부터 남녀가 다시 새롭게 경쟁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남자 대 여자! 과연 삶의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어차피 성이란 게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닐 테고……. 죽으면 다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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