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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n 02. 2021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콩쥐의 화려한 외출

 아이들이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대부분의 부모들은 학부모가 되었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곤 한다. ‘내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친구들이랑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공부는 잘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엄마들은 다소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게다가 그때 만난 엄마들과의 인연이 거의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 맞는 엄마들과의 커뮤니티 또한 상당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아마도 그건 같은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 입장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크기 때문일 게다. 예를 들어 학교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이라든지, 학원, 음식, 운동, 취미, 교육 등 아이들에게 필요한 갖가지 유익한 정보들을 서로 공유하기 위해서다. 물론 육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엄마들의 수다도 한몫한다.


 첫째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둘째 녀석도 누나의 뒤를 이어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멀리서 지켜보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귀엽고 앙증맞은 새끼 강아지들이 한 대 뭉쳐있는 것과 비슷했다. 그 여리고 작은 몸에는 커다란 가방이 들려 있었고, 고사리 같은 손에는 언제나 신주머니가 꽉 쥐어져 있었다. 행여나 선생님한테 혼날까 싶어 바짝 긴장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너무도 사랑스러운 모습들이었다. 그렇게 둘째 녀석도 유년 시절을 뒤로한 채 당당히 초등 시절로 향하고 있었다.


 딸이 아닌 아들을 키운다는 것은 그만큼 변수들도 많이 작용한다. 가끔 주변 엄마들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를 종합해 보자면,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병원에 실려 가는 아이, 친구들과 주먹질하다가 코피 터진 아이,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려 한 발엔 실내화, 다른 한 발엔 운동화를 신고 엉엉 울면서 집으로 향하는 아이, 학교 체육시간에 혼자 모래놀이하는 아이, 점심시간에 식판을 들고 가다가 앞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온통 반찬 범벅이 된 아이 등등 보통 사내 녀석들은 여자 아이들과 달리 행동반경이 상당히 큰 편이다. 그래서인지 사내 녀석을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다소 힘센 아저씨(?) 같은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초등학교 시절에 있어서 둘째 녀석은 딱히 눈에 띄게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중학교에 와서 사춘기를 아주 호되게 겪고는 있지만 말이다. 세상에 딱히 답이 없다는 말은 이렇듯 삶은 매번 반전의 연속이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말인데, 둘째 녀석이 고등학교에서 가서는 보다 성실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은근히 기대해 본다. 여하튼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친한 친구들 주변으로 커다랗게 엄마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친한 아이들로 인해서 그 아이들의 엄마들은 친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구조는 딱 초등학교 때까지 만이다. 중학교 이후로는 철저하게 아이 취향 따로, 엄마 취향 따로다.


 학교 행사가 있거나 반모임이 있을 때면 늘 그 엄마들끼리 모이곤 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정보들도 공유하고, 때론 자신의 집에 아이들을 초대해서 식사 대접도 하고, 실컷 놀게 하면서 서로 간에 돈독한 우정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사실 내 아이를 위해서 그런 뒷받침을 해준다는 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 시절 아이들, 특히 사내 녀석들은 하나 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친하긴 하지만 매번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사건이 하나씩 뻥뻥 터지곤 했다. 그러니까 친한 것과 사건은 별개였던 것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하교 후 집에 돌아온 둘째 녀석은 가방을 거실 바닥에 “휙” 내던져 놓은 채 곧바로 놀이터로 향했다. 늘 그렇듯 놀이터에 모인 5총사는 숨바꼭질, 잡기 놀이, 딱지놀이, 팽이놀이, 자전거 타기, 공놀이, 모래놀이 등을 하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급기야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아마도 신나게 모래를 만지면서 놀다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누군가가 두 손으로 모래를 듬뿍 퍼서 상대방의 얼굴에 퍼부은 듯하다. 그런데 그 상대방이 바로 둘째 녀석이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어떤 엄마가 다급하게 나에게 전화를 해줘서 알게 된 것이다. 둘째 녀석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울고 있었다. 아마도 상당한 양의 모래가 아이의 눈으로 파고 들어갔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통곡을 할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부은 눈물이 병원에 도착할 때쯤엔 대부분의 모래를 씻겨 내보내 줬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천만다행인지…….  물론 눈은 벌겋게 부어있었다.


 그뿐이겠는가! 또 한 아이에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친구 집의 화장실에서 물장난을 치다가 그만 쭉 미끄러진 것이다. 그런데 운이 없게도 세면대에 입을 정통으로 찧는 바람에 앞 치아 한 개가 부러지고, 입술은 심하게 찢어지는 대형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날 그 집은 거짓말 조금 더 보태 온통 물바다가 되었고, 심하게 다친 아이는 입술을 꿰매는 수술과 인공 치아를 심어야 하는 인생의 쓰디쓴 맛을 경험해야만 했다. 지금도 물론 아이들을 키우면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그 당시에도 아이들로부터 눈을 떼는 순간,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곤 했다.


 여하튼 사내 녀석들을 키우는 엄마들 입장에서는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래도 다들 마음이 따뜻해서인지 엄마들끼리는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좋은 관계로 발전해 나갔다. 그 가운데 좋은 인상은 물론 패션 스타일, 메이크업 센스, 군살 없는 몸매 등 어느 것 하나 빠질 게 없는 젊은 엄마가 한 사람 있었다. 그 엄마만 등장했다 하면 다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칭찬 파도타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그러니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것 같은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자신의 시집살이에 관한 얘기 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했다.


 얘기인즉, 시어머니가 자신의 집에 와 계시는데, 며느리로서 매일같이 밥상에 나물 요리를 올려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 다르게 세 가지의 나물로. 그 얘기를 듣고 엄마들이 모두 기겁을 했다. 아이들 키우는 것도 벅찬데 매일같이 시어머니가 드실 나물을 세 가지나 해야 한다니 그 어떤 엄마가 분노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더 심각했던 건, 한겨울에 온수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금세 와서는 다시 냉수 쪽으로 확 돌려버린다는 것이다. 보일러 값이 많이 나온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겨울에 찬물로 설거지를 하다 보면 눌어붙은 밥과 빨간 고춧가루 얼룩 그리고 식용유 기름때가 제대로 씻겨질까 싶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시집 살이었다.   


 그런데 그런 호된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엄마가 모임이 있는 날엔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예쁘게 단장한 연갈색 헤어스타일에 한 듯 안 한 듯 은은한 메이크업, 머플러로 감싼 세련된 패션 감각, 게다가 더 놀라운 건, 네일아트로 한껏 멋을 부린 화려한 손톱이었다. 도저히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며느리 같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보니 자신은 시어머니를 향한 스트레스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승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누가 뭐라고 하든 나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고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단다. 그러니까 엄마들이 바라본 그 엄마의 모습은 새엄마한테 구박받는 콩쥐가 절대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찾아가는 화려한 외출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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