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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pr 29. 2020

사춘기 엄마 처방전

3-3 아이의 행복 공간, 놀이터와 친했던 나

 “아무개야, 공 던진다. 자, 받아. 슛...  아이고! 공이 저리로 날아가 버렸네.”

 “엄마, 내가 주워 올게요.”

 “…….”

 “…….”

 “엄마, 이제 내가 엄마한테 던질게요. 자, 받아요. 이얍...”

 “와우! 엄만 받았네. 쨘...”

 “엄마는 공 받기 천재예요.”

 “우리 딸도 곧 그렇게 될걸.”


 아이들에게 놀이터란 마음껏 소리 지르며 뛰어놀기도 하고, 이곳저곳 주변을 탐색하면서 사회성과 창의성을 길러 나가는 놀이 학습장이다. 첫째 아이가 2살 때부터 난 아파트 내 놀이터와 친해졌다. 그때는 그냥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쉬엄쉬엄 놀이터를 한 바퀴 돌고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러다 보면 나름 기분 전환도 되고, 아이에게 있어서는 모처럼 바깥바람을 쐬니까 집안에서 칭얼거리는 게 조금 덜했다. 그렇게 난 아이가 2살 때부터 놀이터와의 인연을 시작하였고, 점점 더 친한 사이가 되어 갔다.


 아이가 3살 때부터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친구들도 사귀고, 재미있는 소꿉놀이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인 나도 덩달아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도 떨고, 이런저런 정보도 얻으면서 하나의 든든한 아줌마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갈 수 있었다. 특히 육아 부분에 있어서 엄마들의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 아이가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아이 키우기 힘들지 않아요?”

 “당연히 힘들죠. 우리 아이는 반찬 투정이 어찌나 심한지 몰라요. 콩이란 콩은 다 빼고, 나물 종류는 거의 안 먹어요. 이러다가 영양실조 될까 싶어요.”

 “우리 아이는 본인이 원하는 걸 안 사 주면 그냥 드러누워요. 며칠 전에도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로봇을 사 달라고 막 조르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된다고 했더니 사람들 보는 앞에서 막 드러눕더라고요. 순간 얼마나 창피했던지 집에 와서 분이 풀릴 때까지 혼냈어요.”

 “정말 그럴 땐 얼마나 꼴도 보기 싫은지 몰라요. 사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거든요. 정말이지 요즘 같이 물질 만능 시대에는 아이들 키우기가 더 힘들어요. 남들 갖는 것, 저도 다 가져야 하니…….”

 “그러게요.”


 대부분의 엄마들은 육아로 인해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런데 난 첫째 아이가 너무 순하고 말도 잘 들어서 엄마들의 말에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 공감하는 척했다. 그 상황에서 “우리 아이는 너무 순하고, 말도 잘 들어요.”라고 하면 분위기는 금세 싸해질 게 뻔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엄마들 네트워크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도 내 아이가 말을 너무 안 들어 죽고 싶은 심정인데, 상대방 엄마는 자기 아이 자랑만 하고 있으면 몹시 얄미울 것 같다.


 여하튼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꿈의 공간이었고, 엄마들에게 휴식, 정보 교환, 폭풍 수다를 떨 수 있는 그야말로 쉼터 그 자체였다. 게다가 놀이터에서 형성된 엄마들 네트워크는 돌아가면서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또 다른 재미도 안겨 주었다. 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초대되어 뭉치는 순간 어느 집이든 한순간에 초토화가 되어버리곤 했다. 주스를 담은 물컵이 바닥에 엎질러져 끈적끈적해지는가 하면 집에 있는 블록들이 전부 쏟아져 나와 발 디딜 틈조차 없게 만들고, 몇몇 블록은 아예 농장 밑으로 깊숙이 들어가 찾을 수조차 없었다.


 그뿐인가! 저쪽에서는 아이들끼리 내 거니 네 거니 하면서 장난감 가지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이쪽에서는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리는 바람에 그 아이 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며 초대한 엄마한테 대신 사과하는 등 약 2시간가량 머물면서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다. 그 사이에 엄마들은 그동안 쌓여 있었던 스트레스를 폭풍 수다로 풀어내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관찰했다. 그렇게 엄마들은 놀이터와 각자의 집을 오가며 스트레스도 풀고, 아이들의 사회성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놀이터는 오히려 엄마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도대체 우리 남편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이는 나 몰라라 하고 오직 리모컨만 돌리면서 TV만 본다니까요.”

 “아이고! 나도 그래. 나는 씻기라도 했으면 좋겠어. 얼마나 발 고린내가 심하게 나는지 아이가 항상 코를 움켜잡고 있다니까.”

 “다들 남편 분들에게 쌓인 게 많은 것 같네요. 사실 전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이 더 미워지더라고요.”

 “도대체 시어머니가 어떠신데…….”

 “지금 우리 집에 와 계시는데, 추워도 뜨거운 물을 사용할 수가 없어요.”

 “아니, 왜요?”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어느새 제 옆에 오셔서 찬물 쪽으로 확 돌려버려요. 보일러 값 많이 나온다고.”

 “정말 심하시네요. 내가 다 분노가 치솟는데요.”


 아이들의 행복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터! 마음껏 뛰어놀고, 마음껏 소리쳐도 그 누가 뭐라 하지 않는 신나는 놀이터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기 위한 엄마들의 마음을 먼저 위로하고 다독여 준 그런 가슴 따뜻한 공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아파트 내 놀이터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었던 꿈의 공간이었다. 그 당시 난 아무리 바빠도 놀이터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실컷 놀게 했다. 아이는 자전거도 타고, 그네도 타고, 또래 아이들과 미끄럼틀에서 잡기 놀이도 하면서 정말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딸아이는 그 당시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을 추억하며 웃음 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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