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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조 Oct 27. 2024

'패스파인더(여왕)' 가람과 모르드레드 이야기 (2)

뜻밖의 '야생종(옥타비아 버틀러)'와의 연관성


가람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세팅이 되어 있던, 가람 외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각성자이자 또라이 싸이코패스 모르드레드는 뭐 이런 캐릭터가 다 있지 싶지만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종종 보이던 캐릭터 유형에 속하는데, 판소에서 주인공한테 ~너만이 날 이해할 수 있어~ 같은 류의 집착을 하느라 (높은 확률로 남남사이에서) 묘한 텐션을 형성하여 독자들에게 사심섞인 지지를 받는 캐릭터형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모르드레드는 아주 초반에 보통 그런 캐릭터는 하지 않는 쪼잔한 짓을 해서 기회를 놓친 웃기는 캐릭터.


작품 내적으로도 뭔가 사랑받지 못해서 비극적인 캐릭터인데 작품밖에서도 비슷하게 지지를 못받아서 너무 웃기다. 게다가 모르드레드는 악마같이 집착하고 잔인한데에 비해 가끔 좀 허무하게 모양 빠지는 바보될때가 있어서 패러디된 캐릭터 같은 느낌도 있다. 가람이 입만 나불대는 모르드레드 머리 따서 들고 다니는 것도 상당히 재밌는 장면이었다.


이후 옥타비아 버틀러가 쓴 야생종의 아냥우와 도로의 관계를 보면서 가람과 모르드레드 생각이 많이 나서, 패스파인더 작가가 야생종을 본 후 패스파인더를 구상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야생종에서도 아냥우와 도로는 적대적인 관계이고, 도로가 아냥우를 미친듯이 괴롭힌다. 아냥우는 여성을 대표하고 도로는 남성을 대표하며 도로는 양성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성적인 악함을 지닌 싸이코패스로 등장하는데 야생종은 패파와 달리 두 사람의 결합으로 끝남.


이것은 기본적으로 로맨스 플롯을 따랐기 때문인데, 그 세상에서 아냥우와 도로는 서로에게 자신을 제외한 유일한 불사의 존재이자 대체불가능한 운명적 존재였다. 이는 처음엔 절대 로맨틱한 의미가 아니었으나 뒤로 갈수록 바뀌게 된다. 도로는 아냥우가 운명적 존재라는 사실을 패파의 모르드레드와 마찬가지로 매우 늦게 깨닫게 되어 마치 후회물 남주와 같은 루트를 탔다.


아마 옥타비아 버틀러가 야생종에서 의도했던 아이러니는, 도로와 아냥우가 특별한 '신'이라는 점이 로맨스물에서 흔히 두 주인공이 다시없을 특별한 연인 사이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할애하는 정당화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는 실제로 이 자체로 꽤나 로맨틱하다.


그 다음으로 다가오는 깨달음은 별로 로맨틱하진 않은데, 끈질긴 가정폭력의 피해자처럼 묘사되던 '아냥우'에게도 도로가 영원한 시간을 살아가며 생기는 허무와 고독감을 해소해줄 수 있는 (나와 같이) 유일한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아냥우는 끊임없이 남자를 용서하는 여자(어머니) 같기도 하고, 이 소설 자체가 이성애에 대한 신화적인 이야기 같기도 하다.


패스파인더의 모르드레드 역시 도로와 비슷하게 행동하고 변화했지만, 가람은 아냥우와 비슷한 상황임에도 모르드레드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그냥 고독한 단독자로 살아갈 것을 선택한다는 차이가 있다.


만약 야생종을 안다면, 읽었다면, 그리고 그 결말의 의미를 알고 재밌어했으면서도 다른 버전의 결말이 있는 이야기를 약간 꿈꿨던 사람이라면 패파의 결말이 좀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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