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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Jan 10. 2022

처음의 처음의 처음

<처음>

처음. 어떤 처음에 대해서 써볼까 고민했다.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수많은 처음이 있었다. 기억을 과거로 되돌려보자면 첫 출근, 첫 대학, 첫 여행 같은 게 있었지. 그렇게 나의 처음을 파헤쳐가다보니 문득 나의 처음의 처음의 처음은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내가 태어났을 때, 말도 하지 못했을 땐 기억이 거의 없으니, 그건 온전한 나의 처음은 아닐테다. 그렇다면 나의 첫 기억은 언제일까. 기억 속 저 아래, 먼지 쌓인 나의 첫 기억을 탈탈 털어보았다.



울고 있는 아이


첫 기억 속 나는 울고 있다. 그리고 내 앞엔 갓난아기인 동생이 누워 있는데 동생도 울고 있다. 아마도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것 같다. 그리고 자리를 비우기 전, 자고 있는 동생을 잘 돌보라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섯살 난 아이가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나는 갑자기 울음이 터진 동생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랐고, 엄마가 그렇게 하듯 동생의 가슴을 토닥여보지만 울음은 그치지 않는다. 다섯살의 나는 그 상황이 무섭고 서러워서 동생을 붙잡고 함께 펑펑 울었다.


이후로 엄마가 집에 왔는지, 동생은 울음은 그쳤는지, 그 뒤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의 첫 기억은 울고 있는 내가 전부다.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느낀 공포였던걸지도 모른다. 그 강렬함 혹은 충격 때문에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의 첫 기억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어떤 일에 이름표를 붙이는 걸 좋아하지 않고, 과거 기억을 되새김질 하는 성격도 아닌터라 나의 수많은 처음은 찾을 수 없는 기억 저편에 묻혀버렸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처음들도 그 때의 흐릿한 사진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그 때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 바싹 말라버린 낙엽처럼 바스라져 사라진다.


하지만 나의 첫 기억,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은 아직도 여전히 강렬하다. 첫 기억이 감정까지 고스란히 간직한 채 뇌리에 머물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할 뿐이다.



처음의 집합


'처음'이라는 단어는 보통 시작을 뜻하는 말이니 과거처럼 여겨지기 쉽다. 실제로 나의 수많은 처음도 이제 과거에 머무른다. 하지만 익숙했던 일도 따지고 보면 묘하게 다르고, 늘 처음 맞닥뜨리는 부분들이 생긴다. 내겐 경험했던 도시보다 처음 겪게 될 도시가 훨씬 많이 남아있다. 내일도 오늘과 비슷한 하루가 흘러가겠지만, 그 순간들 중에서도 처음 마주하는 것들이 있을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매 순간의 '처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울고 있던 다섯살의 기억처럼 모든 처음이 강렬하지는 않을테다. 각각의 순간마다 강렬함이 달라 처음같이 느껴지지 않을때도 있을거다. 수많은 처음은 이제 과거가 되었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수많은 처음은 내 미래가 될 것이다. 


한가지 바라자면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첫 무언가가 공포나 두려움보다는 짜릿한 기쁨, 혹은 환희 같은 생기 넘치는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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