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어쩌다보니 채사장이 쓴 책을 올해 다 읽게 되었다. 지대넓얕2 – 시민의 교양 – 지대넓얕 1의 순서로, 아주 이상한 순서로 읽게 되었는데, 시민의 교양과 지대넓얕 1권의 내용이 굉장히 비슷해서 이번 책이 조금 지루했다. 1권에서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을 다루는데 경제적 시각으로 이 사건들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역사를 원시,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눈다면 그것들을 경제적 생산수단의 변화로 설명하는 것이다. 유일하게 이러한 틀을 조금 벗어난 주제가 ‘윤리’에 대한 글인데 이것도 결국 하이에크와 롤즈를 설명하며 신자유주의와 적극적 시장 개입의 양자 구도로 글을 끝맺는다.
여기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원래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책을 읽을 때 자꾸만 삐딱한 시선이 생긴다. 세상이 불신으로 가득차서 그런건가. 그의 책의 애독자들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은 독후감이기에 가감없이 적어봐야지.
마지막으로 4의 판단이 조금 이상한데, 이 판단은 단적으로 어리석다. 4를 선택한 사람은 자본가에 비해 가난할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 대신,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를 선택했다. 그것은 이익을 고려한 경제적 판단도 아니고, 윤리적 판단도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부유한 타인들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은 전혀 윤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4를 선택한 이가 있다면, 그는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누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파트를 설명하며 그는 4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나누었다. 1. 보수적인 자본가, 2. 진보적인 노동자, 3. 진보적인 자본가, 4. 보수적인 노동자. 4의 판단이란 노동자들이 보수성향을 띤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경제적 관점으로 설명한 나머지 그 틀 안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물론 이 책 안에서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경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보수적인 노동자들이 경제적 판단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어리석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이기 때문일까.
그는 보수와 진보가 선과 악으로 나뉘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보수적인 노동자들을 ‘단적으로 어리석다’고 말한 것은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선으로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은 자꾸만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이분법적 틀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 강제로 나에게 그러한 프레임을 요구하니 조금씩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꽁기꽁기한 마음이 쌓여 괜한 대목에서 터졌을지 모른다. 내 나름의 반박글을 몇 번 이고 적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엔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내공을 많이 쌓아 그의 논리에 반박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겠노라고. 책을 끝까지 읽고 얻게 된 생각은 이거 딱 하나였다.
채사장이 글을 읽기 쉽고, 간결하게 잘 쓰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의 책이 기대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를 말하고자 하는 책이라면 더더욱. 쓰는 방식이 너무나 뻔해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에 열광했는지는 알지만 한계가 명확히 보인다. 만약 다음 차기작의 주제가 ‘생물학’, ‘우주’ 같은 이분법으로 절대 나누어질 수 없는 그런 학문이 아니라면 나는 그의 책을 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