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나는 서울로 상경했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부산은 누군가에겐 광안리 바다와 돼지국밥으로 유명한 관광도시이지만 내겐 나의 뿌리 같은 도시이다. 성인이 되고서 사회를 경험할 때 모든 기준은 부산이었다. 서울의 지하철은 부산보다 훨씬 복잡했고, 사람도 부산보다 훨씬 많았다. 한강의 풍경도 좋았지만 탁 트인 부산 바다보단 덜했다. 도시 곳곳에 산이 많고 도로가 복잡한 부산과 달리 서울은 그렇지 않았고 도로 정비도 잘 되어 있었다. 서울의 여름은 부산보다 더웠고, 겨울은 부산보다 추웠다.
하지만 이런 낯섦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하철과 한강과 거리의 도로들은 이제 하나도 새롭지 않다. 살을 에는 추위는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지만 간간이 내리는 눈은 이제 제법 익숙하다. 반면 부산에서만 들었던 강한 억양의 사투리와 어른들의 오지랖은 점점 낯설어졌다. 부산에 내려가는 건 명절, 혹은 가족들의 생일 정도라 1년에 세네 번이 전부였다. 그렇게 부산은 내게서 점점 희미해져갔다.
그리고 작년 4월, 회사를 그만두고 짐을 챙겨 부산에 내려왔다. 약 10년 만에 다시 부산에 살게 된 것이다.
한 도시에 사는 것과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다시 부산에 살게 되면서 나는 부산에 사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부산엔 가족이 있고, 탁 트인 바다도 있고, 비교적 시원한 여름과 따뜻한 겨울이 있다. 국내에서 제일 큰 백화점이 있고 코스트코도 있고 이케아도 있다. 로켓배송도 된다. 살기엔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하지만 부산의 인구는 점점 줄고 있다. 다들 우스갯소리로 이젠 노인과 바다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들 부산을 떠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여기엔 먹고 살거리가 없다. 나 또한 부산에서 일을 구해 잠시 회사를 다녔지만 대부분의 업무들은 서울에서 이루어졌다. 다른 회사들은 조금 낫나 싶어 구직 사이트를 뒤져봤지만 부산엔 내가 원하는 조건은 없었다. 직업을 갖고 커리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어 분명한 제약이 있다. 내가 부산을 떠나 살았던 곳이 서울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기회, 경험의 범위들은 부산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우위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고향 친구들과 만날때면 부산에 사는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하는데, 친구들 또한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살기 좋은 도시인 건 분명하지만, 먹고 살기 좋은 도시인 줄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 결론은 하나다. 돈 벌고 나이 먹을만큼 먹고 다시 부산에 오자. 추위에 뼈가 시릴 나이가 되면 부산으로 내려와 따뜻한 겨울을 보내자. 가끔 바다를 보고, 산을 오르자. 결국 우리도, 노인이 되어서야 부산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부산은 내게 애정의 도시다. 나는 부산이 여전히 좋다. 놀거리 많은 관광도시라서가 아니라 나를 키워주고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준 고마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도시에 생기가 넘쳤으면 좋겠다. 나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에 남을 수 있도록 매력적인 도시였으면 좋겠다. 잠시 머무르는 도시가 아닌, 먹고 살기에도 괜찮은 도시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