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3가지였다.
1년전에 읽었더라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 그나마 지금 읽어서 2/3정도는 이해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1/3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
- 처음에 제목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읽을까말까 고민을 좀 했었다. 연애 심리에 관한 책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연애'에 관련된 많은 글들은 비슷한 소재에다 풀어가는 방식도 비슷하다. 지루하고 오글거린다. (오글거린다 라는 단어가 너무 가볍게 느껴지지만, 나는 사랑에 관한글을 가볍에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글거린다'를 제외한 적절한 단어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고 싶었고, 가볍게 읽을만한 책을 찾았기에 이 책을 골랐다.
다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지만, 내가 연애에 관한 글이 지루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제대로 된 책을 못봤기에 그랬던 것 같다.
- 비슷한 소재와 뻔한 연애담을 이 글은 참 재미있게 풀어내었다. 소재는 아주 현실적이지만 풀어내는 방법이 아주 재미나다. 남자주인공의 자아가 밖으로 새어나와 '나'를 관찰하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뭐랄까, 굉장히 상투적이지 않다. 어디서 본 듯한 사랑의 상투어들을 재치있는 관찰자가 재미있게 표현한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톡톡튀는 말들이 사람을 피식거리게 만든다.
그리고 아주 놀랐던 건 이 책이 알랭 드 보통의 처녀작이라는 것, 심지어 발간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나오게 된 책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사랑이란건 예나 지금이나 참 변함없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같이 여행을 가고, 밥을 먹고,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 함께 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
그의 작품이 어떻고를 떠나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인다. 사랑 본질에 관한 것을 얼마나 잘 꿰뚫고 있었는지 책을 덮고나니 더욱 잘 느껴진다.
- 알랭 드 보통의 말은 이해하기 쉬운듯 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글이 어렵게 써놓은 재미없는 글인데, 그의 글은 읽기 어렵지만 재미있다. 그의 글에 관해서도 굉장히 호불호가 나뉘던데 섬세하고 지적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난해하다는 평도 많이 받고 있더라.
어렵고 길고 복잡하지만 자꾸만 읽게 되는 그의 글에는 이제껏 내가 느끼지 못했던 섬세한 관찰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자꾸만 읽게된다. 정말 마성의 필력이다. 앞으로 3~4권 정도는 더 읽어보게 될 것 같다. 난 이미 현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