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동네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어 재개발 동의율이 몇 퍼센트를 넘겼다는 현수막이 걸릴 때마다, 현수막 속의 숫자가 커질 때마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땅을 파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라 해도 언젠가 이곳은 유령도시처럼 변할 테고, 고양이들의 터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동네는 공사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왼쪽의 공사가 끝나면 오른쪽의 공사가 시작됐고 그다음엔 건너편에서 공사가 시작됐다. 그 피로감은 엄청났다.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그 위로 새로 올려진 건물을 보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혔다.
한 동네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동네에 대한 애정은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한 후로 커져갔다. 내가 동네를 인식하는 방식은 동네 고양이와의 관계를 맺기 전과 후로 나뉜다. 삶이 나로 한정되었던 시절에는 동네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저 출근하기 위해, 우리 집 현관문에 들어서기 위해 지나치는 추상적인 공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보살핌을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밥을 주러 다니다 보면 동네 후미진 곳이나 빈 집 등 각종 지형지물을 줄줄이 꿰게 되는데, 직업병처럼 자연스레 '나중에 저기에 집 놔주면 딱이겠다.' 하면서 위치를 봐두거나, 동네 굴러다니는 벽돌도 소중히 모아놨다가 겨울집 고정하는데 쓴다.
나는 동네 고양이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고양이의 눈으로 지형지물을 익힌다. 아파트 지하 통로가 어디서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창고는 어디에 있고 새끼를 숨겨놓을 만한 장소는 어디인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예쁘니를 처음 만났던 장소는 우리 아파트와 주택사이의 담이었다. 예쁘니는 주로 담벼락 위에서 나무를 타고 아파트로 내려오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곤 고양이에겐 담이 길이 되고, 나무가 계단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예쁘니가 돌아다니는 길은 인도와 도로로 나뉜 인간들의 평면적인 공간과는 달랐다. 좁은 담벼락 위를 아슬아슬하고도 안정적으로 걸어가더니 훌쩍 마당으로 뛰어내리고, 다시 담벼락에서 주택 대문 위의 좁은 공간으로 훌쩍. 급히 나도 아파트 밖으로 뛰어 나가 주택 앞에 도착하면 이제 왔냐는 표정으로 대문 위에서 유유히 나를 내려다보는 예쁘니가 있다. 수평과 수직을, 사람들은 이동할 수 없는 공간을 자유자재로 통과하는 걸 보면 마치 어릴 때 하던 슈퍼 마리오 게임처럼 보인다.
동네 캣맘들은 연결 연결 되어 있고, 어찌어찌 수소문한 결과 다행히 그 주택의 할머니께서 예쁘니를 돌봐 준다고 했다. 예쁘니가 오면 밥을 주고, 겨울에는 지하실 한 켠을 내어 준다고. 예쁘니는 그 집 대문이 닫혀 있거나 말거나 고양이만이 다닐 수 있는 통로를 따라 지하실로 내려가 자는 듯하다. 그래서 주택가는, 담에서 나무로 이어지는 길은, 좁은 틈과 더러운 공터조차도 고양이들에게는 아주 고마운 장소가 된다. 덤불이 자라 어수선한 동네 노는 땅은 오직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야만 보이고, 그래서 그 장소는 이 동네 고양이들이 안심하고 낮잠을 자는 쉼터가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들이 어우러져 지내는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아파트와 주택, 아기자기한 카페가 어우러진 우리 동네가 싹 갈리고 나면 고양이 존재 자체가 어색한 공간으로 돌변할 것이다. 번쩍번쩍한 브랜드 아파트, 인위적인 조경, 굳게 잠긴 출입문. 제아무리 예쁘니가 점프를 잘해도 비밀 번호를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철옹성 같은 아파트를 출입할 순 없을 거다. 보기 좋게 심어진 나무는 더 이상 고양이들의 계단으로 기능하며 길과 길을 이어주지 못할 것이다. 공터는 버려진 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잘 정리된 후 효율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빈틈없이 깔끔한 이 구역은 철저히 인간들 만을 위한 공간이 될 것이다.
지난번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한 아이가 화단 쪽을 보더니 “와 길고양이다!” 하고 소리쳤다. 가끔 고양이에게 과한 관심을 주며 구경거리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아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는데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길고양이 아니야. 여기 주인이야.” 그 말을 듣고 정말 내가 들은 게 맞나 싶어 얼떨떨했다. 그 후로 그 아름다운 대화를 내내 곱씹었다. 인간은 소유의 개념으로 공간을 바라보지만, 고양이들에겐 동네 곳곳이 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작년 여름 아파트의 조경 작업은 주민들의 비난을 받았는데, 무리하게 가지를 많이 친 탓이다. 그래서 인간도 고양이도 그늘을 잃었다. 동네의 끊이지 않는 공사 소음에 인간도 고양이도 모두 고통받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인 만큼 비인간동물들도 마땅히 인간의 도시 계획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