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앞발을 절룩이는 턱시도 고양이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서는 내 발밑으로 쏙 들어왔다. 딱 봐도 앳된 모습이 7개월쯤 됐으려나. 바닥에 뒹굴며 아무에게나 애교를 부리는 이 고양이는 단숨에 우리 아파트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됐다. 발을 절룩이면서도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녔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이 부어갔다. 우리는 고민할 것도 없이 얘를 병원에 데려갔다. 이름 없던 고양이는 갑자기 사랑이가 되어 입원 치료를 받았다. 치료 끝에 염증은 가라앉았지만 어쩌면 평생 한쪽 발을 절룩이며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장애를 안고 길 생활을 하기에는 무리기에 우리는 백방으로 사랑이 입양처를 찾기 시작했다.
동네 고양이 조력자의 여러 일 가운데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었던 일은 입양 보내기였는데, 이 일은 늘 내게 어디까지 할 수 있냐며 나를 시험하는 것만 같다. 언뜻 입양 보내는 거 좋은 일 아닌가 싶지만 입양판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겁먹는지 알게 된다. 입양을 보냈더니 유기했다거나 알고 보니 학대범이었다든가, 불법 농장에 팔려간다든가 하는 흉흉한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그러니 입양 가서 잘 못 될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영역에서 사는 게 낫다고 여기는 캣맘도 많다.
입양은 나와 고양이 관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이 된다. 내게 사람을 잘 볼 수 있는 눈이 있는지, 조건이 조금 부족하다는 이유로 좋은 사람을 놓쳐버리는 건 아닐지 생각하다 보면 내 손에 달린 생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내게 한 생명의 운명을 결정지을 선택의 순간이 온다는 건 무겁다 못해 무서운 일이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까 봐, 내 선택으로 고양이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봐 늘 쉬운 회피를 택해왔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심란해질 무렵 기적처럼 사랑이 입양처가 구해졌다. 다리가 아픈 사랑이를 품어주기로 하셨단다. 분명 좋은 일임에도 불안했다. 한쪽 다리에 장애를 가진 고양이를 이렇게 선뜻 입양한다는 게 믿기 어려웠다. 고양이 조력자의 트라우마이자 직업병인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버릇이 나왔다. 제공받은 정보를 전제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는데 사랑이의 말썽을 감당할 수 있을지, 가족 구성원에 변화로 인해 파양 되는 건 아닐지(결혼과 출산으로 파양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말의 가능성의 가능성까지 쥐어짜 냈다. 다 사랑이를 위한 건데 이게 나쁜가. 그러나 입양자의 경제적인 상황까지 가늠하게 되자 좋은 일에 자꾸만 의심을 품는 게, 한 사람을 멋대로 재고 판단하는 게 징그러워졌다. 한 사람의 책임감을 그런 것들로 판단할 수 있나.
지금은 반려견 요다의 지극정성 보호자이자, 동네 고양이들의 조력자이지만 10년 전의 나는 무지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봐도 당시의 우리 가족은 모두 입양 부적격자들이었다. 반려동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고, 약간은 즉흥적이었던 데다가 엄마는 새로운 가족을 들이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현재 우리의 상황 역시 그다지 좋은 조건은 아니다. 나는 수입이 불안정하고, 비염이 있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조금씩은 아프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 입양 자격이 판단될 거라 생각하면 억울해진다. 나의 불안정한 상황이 요다에 대한 사랑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히려 10년의 세월 동안 내게 조금씩 아픈 곳이 늘어났기에, 요즘 부쩍 잠만 자는 요다의 변화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사랑이 입양자분이 한 아름 준비해 둔 고양이 용품과 스크래쳐, 무엇보다 가게에 방문한 우리에게 뭐라도 대접하고 싶어 급히 사 오신 붕어빵의 온기에 나는 안도했다. 사랑이는 그야말로 뼈대 있는 고양이 가문으로 입양 갔다. 알고 보니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다묘 집사에, 다른 지역에서 동네 고양이도 돌보는 따뜻한 분들이셨다. 그러나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는 사랑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믿는 것은 그들에게 생길 변화다. 오래전 요다가 우리 삶에 들어오기 전에는 요다에게 내어줄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나 많은지 알지 못했다. 한 생명을 책임질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며 다른 종과의 동거가, 요다가 우리를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완벽한 사랑은 없다. 서툴게 서로를 아껴주는 법을 배울 뿐이다. 사랑이 역시 새로운 가족에게 그런 존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