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거룩한 밤
-크리스마스의 기억
어둠은 오래된 청동거울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청동 거울의 깊고 거친 단면이 마냥 좋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청동 거울에
명자야, 명자야
엄마 얼굴이 비칠 것 같았습니다
청동 거울이 화려하게 빛나며 선물 상자를 들고 올
엄마를 기다렸지요
청동거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직 깊어만 가던 겨울밤
까딱 졸다 깨면
왜 그리 춥던지요
나는 차라리 골목 밖으로
나가보려 합니다
툇마루를 내려서서 대문으로 향하는 길
징검돌처럼 명자나무가 서 있었지요
명자나무 길을 야무지게 디뎌 밟고
하나, 둘, 셋… 걷다 보면
골목 앞 가로등이 선량한 얼굴로 서 있습니다
가을날 햇살 듬뿍 받은 사과처럼
내 볼도 사과가 될 것 같습니다
하늘은 청동거울 속에 갇히고
명자나무는 은하수가 되고
가로등은 내 얼굴을 감싸줍니다
어디선가 달려오고 있을 엄마를 기다리며
잠들지 못하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오지 않고 졸음은 깊어집니다
나는 명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다시 대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내 방으로 이어지는 길에
명자나무가 빛을 잃은 별무리처럼
깊고 깊은 청동 거울 속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툇마루 나뭇결을 따라
명자의 발바닥을 간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