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놀 Dec 24. 2021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명자 이야기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크리스마스의 기억

    


어둠은 오래된 청동거울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청동 거울의 깊고 거친 단면이 마냥 좋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청동 거울에

명자야, 명자야

엄마 얼굴이 비칠 것 같았습니다

청동 거울이 화려하게 빛나며 선물 상자를 들고 올

엄마를 기다렸지요     


청동거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직 깊어만 가던 겨울밤

까딱 졸다 깨면

왜 그리 춥던지요

나는 차라리 골목 밖으로

나가보려 합니다

    

툇마루를 내려서서 대문으로 향하는 길

징검돌처럼 명자나무가 서 있었지요

명자나무 길을 야무지게 디뎌 밟고

하나, 둘, 셋… 걷다 보면

골목 앞 가로등이 선량한 얼굴로 서 있습니다

가을날 햇살 듬뿍 받은 사과처럼

내 볼도 사과가 될 것 같습니다   

  

하늘은 청동거울 속에 갇히고

명자나무는 은하수가 되고

가로등은 내 얼굴을 감싸줍니다

어디선가 달려오고 있을 엄마를 기다리며

잠들지 못하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오지 않고 졸음은 깊어집니다

나는 명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다시 대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내 방으로 이어지는 길에

명자나무가 빛을 잃은 별무리처럼

깊고 깊은 청동 거울 속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툇마루 나뭇결을 따라

명자의 발바닥을 간질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다른 옥희 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