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일요일에 별일 없으면 어슬렁어슬렁 거니는 산책로가 있다.
가까이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공원이다.
메타세쿼이아. 난 그들이 좋다.
완벽한 수직이 좋고, 균형 있게 뻗은 가지들이 좋다.
백악기 공룡시대에도 살았다는 긴긴 역사가 좋다.
그들의 한 세대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정오의 햇살을 찾아 낙엽이 쌓여있는 정자에 앉아 마시는 커피가 좋다.
정자의 처마에 비치는 햇살이 내 이마를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신발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수족냉증을 햇살에 고백하는
그 시간이 좋다.
조금 더 있어 달라는 욕심 따위를 낼 수 없는 정해진 운명이 좋다.
해는 가고 나도 일어나야 하는 시간, 짧은 시간 내게 준 온기가 좋다.
미련 없이 정자에서 일어나 조금 더 걷는 나머지 코스도 좋다.
가는 길에 매점이 있어 가끔 추억 돋는 가나 초콜릿을 살 수 있어 좋다.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거리다, 저녁 메뉴를 궁리하며 내려오는 길에
아까 만났던 나뭇가지들이 남아있는 햇살을 머금은 채로
기울어가는 해를 배웅하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해가 떠난 후, 달빛을 머금을 그들을 부러워하며 돌아오는 길이 좋다.
달빛은 어느 정도의 온기가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돌아오는 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