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 이야기
오래전부터 외로움은 숨어 살았지
틈이란 틈은 모두 그들의 터전이야
바늘구멍 같은 틈에서도 산대
산세베리아 줄무늬에 점처럼 살기도 하고
스트레칭 잘하는 고양이의 발바닥 사이에도
냉장고 문틈이나 싱크대 흠집에도
침대 모서리를 돌아서는 각도의 틈에서도
책 속의 글자 사이에는 도시를 만들 정도고
신발 밑창에도, 양말의 뒤축에도
주머니마다, 블라인드가 거른 햇살 사이에도
살아
우리 집에도 살지
종류도 많아
외로움은 날마다 변종이 나오고 있대
얼마나 심심하겠어, 숨어 사는 삶이
그러니 변종에 변종을 만들지
그날은 이상하게 목이 말랐어
냉장고를 열자마자
외로움이 쏟아져 나왔어
그들도 배가 고팠나 봐
나는
벽처럼 서 있었지
그들은 나를 지나쳐서 날아갔어
몇 종이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었어
멸종위기종에 희귀종도 있던걸
지금
외로움의 홀씨들은
거실 어딘가에 잠복중이야
나는 그들과 대치하며
살금살금 살아
죽진 않겠지, 모른척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