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서머셋 몸, 민음사, 2000
『달과 6펜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달과 6펜스?’라는 모호한 상징을 품에 안고 며칠을 읽었더랬다. 그때는 어떤 매체에서도 책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저 순수하게 읽고 책갈피를 접어두고 예쁜 노트에 옮겨 적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 시절,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강렬했다. 예술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설렘으로 그 책을 안고 친구와 만났다. 눈이 내렸다. “걷자”, “그래 걷자.”가 우리가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달빛은 눈빛과 함께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고 <달과 6펜스>를 은유했다. 밤새 걸었다. 눈도 밤새 왔고. 나는 잠시 예술가의 광기를 빌려 창작의 세계로 들어설 것 같은 착각에, 친구는 그런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달과 6펜스를 돌아가며 가슴에 안고 걸었다. 그날의 일탈은 몸은 얼었을지 몰라도 가슴은 불꽃처럼 타올랐더랬다. 도대체 이 책의 무엇이 어린 소녀들을 밤새 걷게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숨죽이고 읽게 했던 예술가의 광기, 천재성, 무조건적 자유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었을까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그러나 더 강한’ 체재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던 그 시절, 그런 광기와 자유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수십 년이 지나 다시 읽은 달과 6펜스. 질문을 던져본다.
달과 6펜스의 서술자 ’나‘는 스트릭랜드라는 천재적 화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주식 중개인으로 생활하다 어느 날 가정을 버리고 화가가 되기로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이 그 이유다. 현실 세계에서 상식에 벗어나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천재성이 있었고 천재성을 알아본 스트로브, 그의 아내인 블란치는 병든 스트릭랜드를 간호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그녀 역시 모든 것을 버리고 스트릭랜드를 선택하지만 냉대로 일관하는 스트릭랜드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 그 후 그는 원시의 섬, 타이티로 떠나고 한센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죽기 전 벽화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지만 그 작품을 본 사람은 그를 마지막까지 지킨 아타와 의사뿐. 스트릭랜드의 유언대로 아타는 마지막 작품을 불태운다. 결국 <달과 6펜스>에서 달의 세계는 영혼과 관능, 본원적 감성의 삶을 지향한다. 오직 그 세계만이 자신의 예술에 접목시킬 수 있는 세계다. 그래서 달과 6펜스다.
보들레르는 천재성이란 ”다시 찾은 유년시절”이라고 말했다. 예술가의 천재성은 유년시절과 같은 즉흥적이고 호기심과 순수함과 성숙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천재는 성인의 권태로운 일상을 거부하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일반적으로 천재는 사회적 선입견과 생각에 반대하여 새로운 견해를 내놓는다. 그래서 천재는 때때로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히거나 배척당하거나 고립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것은 단절된 삶의 형태를 선택하게 만든다.
스트릭랜드는 어떻게 동시대의 문화와 단절되었을까. 그는 원시의 타이티를 동경했고, 타이티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렇듯 천재는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재란 고립 또는 금욕적 삶을 선택한 인물이다. 천재들은 흔히 동시대인들과는 다른 별종으로 인식되며 그들의 괴팍스러움과 사회 부적응성은 광기와의 상관관계에서 고찰된다. 오래전부터 광기와 천재의 상호관계는 입증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계절 내내 같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살바도르 달리나 루소도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유명하다. 고흐나 슈만 모파상도 그랬다. 이들의 천재성은 시대를 뛰어넘은 과감하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광기나 독창성 못지않게 천재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집요함, 추진력, 인내와 노력이다. 그들은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작품에 매달린다. 마치 사명감을 지닌 사람들처럼 보통의 사람이 발휘할 수 없는 열정 어린 노력으로 천재성은 완성된다. 그런 면에서 스트릭랜드의 예술적 천재성은 광기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스트릭랜드에게 있어 절대적 자유란 예술가의 자유, 일 자체가 창조에 기반한다. 정해진 규율이나 법칙을 따를 필요가 없다. 스스로 상상하고 기획하고 설계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무한 자유정신 때문에 그들은 다수의 무관심 속에서 고독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와 독창성을 추구하는 예술가 사이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따라서 예술가의 자유는 사회에 대한 그의 초연한 태도에서 발견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궁금한 것, 예술가의 작품과 삶은 별개인 걸까? 마지막으로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만 평가되어야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도덕적인 삶을 산 평범한 예술가의 작품과 비도덕적 삶을 산 뛰어난 예술가가 있다면 두 작품 중에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할까?
달빛 아래. 달과 6펜스의 두 세계, 우리는 어떤 세계의 빛을 따르고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