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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Aug 13. 2021

그림자 노동

『그림자 노동』, 이반 일리치,사월의책,2015

'우리 동네 구자명 씨'는 어떻게 그림자 노동을 하게 됐을까?     


우리 동네 구자명 씨

맞벌이 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 씨 / 일곱 달 아기 엄마 구자명 씨는

출근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

그래 저 십 분은 /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 분은 / 간밤 시어머니 약 시중든 시간이고

그래 그래 저 십 분은 /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지리산의 봄』, 고정희, 1987)   

  



  고정희의 시 ‘우리 동네 구자명 씨’에서 구자명 씨는 아침 출근 버스에서 졸고 있다. 그녀는 아마도 어제저녁 퇴근 후에 육아와 가사에 시달렸으리란 추측이다.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에서 산업사회 이후 분리된 노동으로 남자와 여자를 역할에 따라 분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구자명 씨는 분리된 노동, 돌봄의 그림자 노동에 더하여 임금노동까지 하고 있다. 세상은 살기 좋아졌다는데, 구자명 씨의 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구자명 씨의 오빠(아마도 구자명 씨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를 것이다)는 다를까? 그녀의 오빠는 철없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아침 일찍 슬금슬금 구자명 씨의 눈치를 살피다 도망치듯 출근한다. 전철역으로 내달려 흘러내리는 달걀부침과 시든 양배추 몇 잎 들어간 토스트로 해장하고, 매스꺼운 오전을 보내며 구내식당에서 점심에 콩나물국이라도 나오길 간절히 빌어본다. 퇴근길엔 하품을 쩍쩍해대며 부자 되는 부동산 강의를 듣고 구자명 씨가 보낸 쇼핑 목록 문자를 확인하며 냉동식품 몇 가지를 골라 바코드를 찾아 찍고, 카드결제도 손수 하고, 서둘러 물건들을 봉투에 담아야 한다. 그리고 쇼핑카트를 제자리에 돌려주면 100원짜리 동전이 딸깍 올라온다. 우리의 임금노동자들은 요즘 이렇게 그림자 노동을 함께 하며 산다. 이상한가? 이상하지 않았다. 일상적이었으니까. 


  그러나 20세기 급진적인 사상가로 알려진 이반 일리치는 현대사회가 얼마나 ‘이상한 사회’인지 과거를 통해서 보고자 했다. 현대사회를 작동시키는 뿌리를 살펴봐야 현대사회가 만들어진 부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자 노동의 실체를 뿌리부터 알기 위한 그의 성찰은 이 책의 다섯 개의 장으로 보여준다. 역사적 과정을 따라 그림자 노동의 실체를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자 노동은 무엇인가. 

  이반 일리치는 인류 역사상 노동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자급자족, 임금노동, 그림자 노동이다. 그림자 노동은 임금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존재하는 무보수 노동, 임금노동을 위한 그림자이다. 이는 자본이 임금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시스템 중의 하나라고 봤다.

 "19세기, 여성을 집안에 가두는(인클로저) 조치는 임금노동이 삶의 필수요소가 되면서부터였다. 노동하는 남성을 가사 일하는 여성의 일대일 관리자로 임명하고 이런 후견자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로 만든 데 있었고, 양과 거지에 대한 인클로저가 실패한 지점에서 여성에 대한 인클로저는 성공을 거두었다."(189p)

  게다가 그 시대의 철학자와 의사가 손잡고 나서서 여성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냄에 따라 여자들은 가정 안에서 활동해야 할 운명을 부여받게 되었고 가족의 생계에 대한 실질적 기여를 무시당하는 한편 임금노동에서도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들은 “여성의 그림자 노동을 신비화했다. 여성이 하는 일을 사회적 재생산과 뒤섞어 버리는 방법으로 노동이 아닌 것으로 규정했다.” (190p)

  



  그렇다면 그림자 노동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그림자 노동과 임금노동은 함께 등장한 것들이다, 양자 모두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림자 노동의 굴레가 처음 씌워진 것은 주로 양성 간 경제적 결합을 통해서다. 임금노동자와 그에게 의존하는 식구로 구성된 19세기 부르주아 가족이 자급자족 중심의 가정을 대체하면서부터이다. (201p) 역사학에서 그림자 노동의 발견은 한 세대 전에 민중 문화나 농민을 역사학의 대상으로 새로 발견한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다시 구자명 씨에게로 돌아와서

  구자명 씨와 구자명 씨의 오빠는 이제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 너무 많은 무보수의 노동을 하고 있었다며, 결의에 찬 눈빛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뭐, 어쩌란 말인가. 더 많은 무보수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당장 육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시어머니께 새로 바꿔드린 휴대폰만 해도 인터넷 구매라 사용 등록에서부터 시작해서 사용방법까지 설명해 드려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정작 저녁 식사를 준비할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구자명 씨의 가족은 왜 냉동식품으로 저녁을 먹어야 하는가이다. 시간을 빼앗기는 탓이고, 정부가 해야 할 공공의 보육과 기업이 해야 할 사용설명을 대신 떠맡은 구자명 씨 부부는 궁금해할 것이다. “그래서 대체 얼마나 비용을 아낀 거지?” 계산이 썩 명쾌하게 되지 않아 찜찜한 상태로 포슬포슬 날아가는 볶음밥을 먹으며 애꿎은 깍두기만 씹어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구자명 씨 부부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일리치는 이 모든 위기의 뿌리가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본 근대 경제학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을 날 때부터 ‘필요’를 가진 존재이고 자연이 희소성을 두고 서로 싸워야 하는 존재라고 보는 관점이다. 하지만 우리의 필요란 조작된 것으로 우리의 삶의 조건은 희소한 것이 아니라 자급자족적 삶을 꾸려가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가난이란 ‘현대화된 가난’으로서 상품을 소비할 수 없어서 생겨난 것이고 그런 점에서 상품은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해 근본적인 독점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품의 끝없는 생산 및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역 생산성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가난의 현대화, 근본적 독점, 역 생산성. 구자명 씨 부부가 지금 당장 냉동식품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주방에 나란히 서서 신선한 재료로 저녁을 만들며 성찰해보아야 할 단어가 아닐까. 

  우리 동네 구자명 씨,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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