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알 것 같아요. 할머니가 장작불을 때서 가마솥에 구수한 것을 끓이고 있군요. 구수하고 뽀얀 국물이라면 곰탕이나 설렁탕이겠네요. 국수가 있는 것을 보니 국수를 말아먹었던 것 같네요. 평상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고 웃음소리도 들렸다니, 잔칫날이군요. 당신과 동생은 아마 잔심부름을 했을까요, 아니면 대청마루에 앉아 손님으로 온 여자아이와 놀고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모여 가마솥에 끓어오르는 곰탕을 먹고 있어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며 곰탕도 진해지고 있었지요. 나와 동생은 침을 꼴깍 삼키며 서 있어요. 할머니가 주인집 부엌에 들어간 사이 대청마루에 혼자 앉아 국수를 코 끝에 붙이며 깔깔대는 여자 아이를 보고 있었어요. 동생 또래 여자아이였어요. 할머니가 양은냄비에 곰탕과 국수 두 덩어리를 말아왔어요. 여동생이 곰탕을 한술 뜨더니 국수를 코 끝에 붙여요. 할머니의 수저가 여동생의 이마를 땡 하고 쳤어요. 그걸 보고 여자아이가 더 깔깔대요. 동생은 눈물과 함께 곰탕을 먹고, 나는 숟가락을 놓았어요. 웃음소리 때문이었을까요, 뭔지 모를 부끄러움과 슬픔이 차올랐어요. 초가을 잠자리들이 대청마루를 맴돌았고 깔깔대던 여자아이는 잠자리를 쫓고 있어요. 잠자리를 쫓는 수저가 반짝, 빛났지요
그랬군요. 괜찮아요, 괜찮아. 당신은 이제 곰탕은 곰탕집에서 사 먹을 수 있고, 여동생과 면치기를 한없이 할 수도 있고, 금수저는 원한다면 주문해서 수저통에 가득 채우면 되고, 그깟 양은냄비는 한 열 개쯤 찌그려서 버리고, 깔깔거리는 여자아이는 무시해버려요. 그 가을날의 기억은 깔끔하게 지워드리지요. 모두 다 지워줄게요 슬픔과 부끄러움이 차오르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