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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 Aug 08. 2024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의 커플을 만나다

 날이 더워 저절로 아이스크림 생각이 난다.

 냉동실에 쟁여 놓기 무섭게 사라지는 아이스크림. 냉동실에 복잡하다는 핑계로 한동안 아이스크림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더위는 견딜 수 없다. 아이스크림이 필요하다. 사러 가자.

 굳은 결심을 하고 슬리퍼를 끌고 아파트 상가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한다.  

   

 딸랑.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저 안쪽에서 주인인지 직원인지 중년의 여자분이 박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한창 진열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콘을 몇 개 고르고 계산대 앞으로 간다. 키오스크 화면에서 나오는 순서대로 버튼을 누르고 아이스크림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넣는다. 다음 순서대로 영수증 받기를 누르자,     

 뚜뚜 뚜뚜.

 둔탁한 기계음이 가게 안에 울려 퍼진다.

 어, 뭐지?

 뭐가 잘못되었지?

 기계치라 이런 소리를 들으면 순간 당황스러워진다.

 분명 키오스크가 시키는 대로 순서대로 했는데?  

   

 그 순간,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 지금 영수증 용지가 없어서 그래요.

  지금 영수증 뽑아 드릴까요? “

 “아니요, 괜찮아요. 없어도 돼요.”

 그제야 안심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봉지에 담는다.

 

“수고하세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가려고 문손잡이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문득 방금 이야기를 나눈 그분의 옷차림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들어온다.

 흰 티에 검은 반바지 하얀 운동화.

 비록 슬리퍼를 끌고 있지만 나도 흰 티에 검은 반바지를 입었다.

 "앗, 우리 옷 커플이네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말을 한다. 여자분도 고개를 내려 자신의 옷을 한 번 내려다보고 웃는다.

 "아, 그러네요. 하하하."

 같이 한바탕 웃음을 나누고 유쾌한 기분으로 가게를 나선다.


 예전에는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이리 반갑지 않았다. 특히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요즘은 비슷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보면 반갑기까지 하다.

 '나 왜 이러지? 아줌마가 다 됐나 봐.'

 이런 생각을 하는 한편 또 다른 이성적이고 언니 같은 자아가 바로 말을 한다.

 '정신 차려, 미르! 너 아줌마 된 지 이십 년도 훨씬 넘었어!'

 그렇다. 벌써 아줌마다.

 이십 년도 훌쩍 지난 시간의 힘이 나의 생각을 좀 더 여유롭게 만들고 있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 멀리서 나와 커플 옷차림을 한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남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얼른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는 부끄럽지 않으나 그 학생이 50대 아줌마가 자신과 비슷한 옷차림을 한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일지 신경이 쓰인다.

 부디 그 학생이 비슷한 옷을 입은 아줌마를 봤다면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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