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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를 잡고 크게 외치다

by 미르

“나 욕실에서 모기 잡았다아~”

아침에 들어간 욕실에서 하얀 욕조 벽에 붙어 있는 모기를 보았다. 살며시 문을 닫고 나와 재빨리 전기 모기채를 들고 욕실로 다시 돌아간다. 모기의 머리 쪽, 즉 모기가 도망쳐 날아갈 앞쪽을 마크하며 살며시 모기채를 모기 위로 완전히 덮는다.

“타닥타닥”

경쾌한 소리와 반짝 불꽃이 일어난다. 성공이다!


스님들은 보시를 하는 마음으로 모기에게 물리고도 모기를 잡지 않고 팔을 휘둘러 내쫓는다고 하는데 나는 요즘 모기가 보이면 다 잡는다. 원래 모기만 보면 잡는 무자비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집안으로 들어온 각종 벌레와 거미를 발견하면 종이컵으로 살포시 덮어 밑에 종이를 받쳐서 자상(?)하게 밖으로 방생시킨다. 아파트 16층에 살아 층수가 좀 높은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벌레들은 날개가 있고 거미는 거미줄을 타고 날아갈 것을 굳게 믿는다.


모기를 이렇게 열심히 잡게 된 것은 재작년에 인터넷에서 1+1로 사게 된 전기 모기채 덕분이다. 그전에 내가 모기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는 다 잊어버렸다. 작년 여름에 모기를 잡느라 꺼낸 모기채 중 하나가 고장이 나서 버리고 하나 남은 모기채로 올해 모기 잡기를 시작했다.


모기를 잡고 나면 뿌듯한 마음으로 온 가족들에게 큰 소리로 알린다.

나의 업적을! 나의 행동을!


자신을 알리는 것은 딸아이로부터 시작되었다. 몇 해 전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지 샤워를 할 때 다른 가족이 부엌이나 베란다에서 물을 쓰면 일정하게 나오던 물줄기가 잠시 약해졌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나는 그럴 때면 누가 물을 쓰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데 딸아이는 신경이 쓰이는가 보다. 그래서 샤워하러 갈 때마다 자신이 샤워하러 간다고 선언을 한다. 그러면 다른 가족들은 그 시간을 존중해서 물 사용을 자제한다.


이렇게 자신을 알리다 보니 모기 한 마리를 잡고 나서도 자신이 한 일을 알린다.

넓지 않은 집이라 고개만 돌리면 가족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자신의 일을 선언함으로써 그 시간이, 그 행위가 큰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쓰면서 서로를 안다고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모를 수도 있다.

샤워 커밍아웃을 하고 모기 생포 사실을 알리며 나의 시간, 행위를 존중받는다.


말을 하고 나 자신을 알린다.

자신이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른다. 간혹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흔치 않은 경우도 있으나 말 그대로 흔치 않다.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 더욱 조심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한번 당당하게 드러 내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갑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말이 나오기 쉽지 않다. 그러니 집에서라도 이렇게 큰 소리로 자신을 드러내고 크게 외쳐라.

나는 이러하다. 이런 일을 하노라. 나는 이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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