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가 닭처럼 고개를 흔들며 걷는 이유

by 미르

귀엽다.

동물을 잘 모르는 내 눈에

귀여운 걸 보니 아기 백로인가 보다.

아기들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귀엽다.


산책하다 만난 백로는

물속에 발을 잠시 담그고 있다가

겅중겅중 걸어간다.


뽀얀,

야생에 살고 있다고 믿을 수 없는

눈부신 뽀샤시한 깃털로 뒤덮인

우아한 몸통.


샤워를 매일 수시로 한다고 쳐도

야생의 흙 한 톨도 묻지 않은 저 깨끗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몸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을

두르고 있는 것일까?


몸통만 바라보다

가느다란 다리를 본다.


까맣다.

흰 몸통을 더욱더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까만 긴 다리.

검정이 하양을 감당하고

더러움을 다 밟아 버리고 있었다.


꿀렁꿀렁거리며

발을 크게 내디디며

걷는 발을 본다.


노랗다.

아하, 백로에게 흰색, 검은색 말고도

노랑이 있었다.


아기 병아리 같은

연한 노랑이 반갑다.

흑백의 세상에서 생기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머리를 흔들흔들하며

걷는 것을 잠시 보고 있으려니

닭이 생각났다.


분명 우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백로에게서

닭이 생각나다니.


다소 경망스럽게

고개를 끊어서 흔들며 걷는 닭과는

느낌이 좀 다르지만


우아하게

머리를 먼저 내밀고

몸이 따라오고

머리를 다시 내미는 동작이

영락없이 닭의 우아 버전.


조류의 시야의 특징이다.

양눈이 겹치는 부분이 적어

사물이 입체적으로 보이지가 않아

걸을 때 시야를 확보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머리를 흔들며 걷는다.


이 때문에 하늘을 날 때도 문제가 생긴다.

건물 유리창에 부딪치거나

날아가는 비행기에 부딪치는

일이 가끔씩 일어난다.


하늘에서 전속력으로 날 때

부딪쳐서 일어나는 사고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는 그러한 사고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균형 있게 산다는 것.

입체적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거리감을 익히는 것.

모두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이다.



반짝반짝 빛나게 살림을 하던

주부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시간과의 투쟁을 하고 있다.


글도 쓰고 싶고

집 안도 반짝이게 하고 싶고

둘 다 하고 싶다.


적당히 타협한다.

균형을 잡는다.


시간을 확보해서 글을 쓰고

시간을 확보해서 집안일을 한다.


예전에 요리를 할 때는

가스레인지 화구 2개는 거의 놀고 있었다.


왜 요리를 하는데 화구가 4개나 필요한지

이해도 능력도 되지 않았다.


한 개 혹은 두 개만 쓰면서

세월아 네월아 요리를 했다.


요즘은 3개나 출동시킨다.

(아직 4개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쪽도

저쪽도

만족할 만한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시간을

열심히 고르게 분배해서 살아가고 있다.


까맣고 하얀 세상 속의 노랑빛처럼

나에게 다가온 빛을 위해

균형을 잡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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