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손이 커지고 있습니다

대용량 반찬 만들기

by 미르

요즘 점점 손이 과감해지고 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요리를 하고 반찬을 예쁘게 만들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맛은 둘째치고

그냥 색을 맞춘 예쁜 것들이 좋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변했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눈에 꽂히는 것을 하나 간택해서

별생각 없이 후다닥 요리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요리하고 시간을 벌어

글을 쓸까 생각합니다.


궁리를 하다가

아, 밑반찬을 대량으로 만들어 놓자에

이릅니다.


대용량 밑반찬.

좋습니다.


오늘의 반찬은 멸치볶음입니다.

냉동실에 기절해 있는

(이미 벌써 데쳐지고 말려서

죽은 지 오래되었지만

저는 기절해 있다고 말하렵니다.

기분 탓인지 좀 신선(?)한 느낌이 드는)

멸치를 꺼냅니다.


기름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에

화르륵 쏟아붓습니다.

아, 좀 많은데.

괜찮습니다.

오늘의 키워드는 대용량입니다.




불을 켜고 휘적휘적 볶아 줍니다.

적당히

(역시 적당히라고 밖에 말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볶은 후 불을 끄고 넓은 접시에 담아 식힙니다.


다음은 프라이팬에 묻은 멸치 가루들을 다 정리하고

이번에는 냉장고에 잠자고 있는 아몬드를 소환합니다.


각종 어려운 발음의 견과류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그 위상이 떨어지긴 했지만

멸치랑은 아주 잘 어울리는 단짝입니다.


어렸을 때

초콜릿에 박혀 있는 아몬드 한 알 한 알을

귀하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콜릿이랑 아작아작 먹어도 맛있습니다.

혹은 초콜릿을 먼저 다 녹여 먹고

그 당시에는 좀 귀했던(?) 아몬드를

뒤에 먹기도 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먼저 먹는다.

맛있는 것을 나중에 먹는다.


요즘도 고민 중인 먹는 방법입니다.


아무튼 아몬드를 프라이팬에 와르르 쏟아붓습니다.

어라, 좀 많습니다.

이 정도면 멸치볶음이 아니라

아몬드 볶음 반찬이 될 듯하기도 한데?


낙장 불입.

아몬드 반찬이라고 우길 작정입니다.


혹 시비가 들어오면

이를 물리칠

엄마들의 클래식하고도 강력한 주문 같은

대답도 있습니다.


"몸에 좋대~."


휘리릭 뒤적뒤적 볶아 줍니다.

아몬드에서 기름이 나와서

좀 더 고소한 맛이 납니다.



이제 양념을 만듭니다.

멸치에 맛있는 간이 있으니

별 간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쉬우니

약간의 간장, 매실청, 올리고당, 다진 마늘,

그리고 물을 넣어 화르르 끓입니다.


끓이는 도중 뭔가 아쉽습니다.

간장의 연한 갈색 옷을 입은 회색 멸치,

진한 갈색의 아몬드.


뭔가 초록색이 있으면 좋겠는데?

급하게 냉장고를 뒤져 보지만

단단한 초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파의 푸른색은 좋으나 단단하지가 않습니다.

힘없는 알배추의 노란색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냉동실의 청양고추가 있지만

그것은 다져서 전이나 국에 들어갈 용도입니다.


그대로 반찬에 들어갔다가는

매운 것에 한없이 약한 새 식구가

식탁에 앉아 사이좋게 딸꾹질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단단한 것.

당근이 눈에 들어옵니다.


뭐,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타다닥 재빨리 채 썰어 양념에 풍덩 넣어 버립니다.


주황색 당근이 들어간 양념이 다 끓고 나서

식혀 놓은 멸치와 아몬드가 들어갑니다.


뒤적뒤적 양념이랑 잘 섞어 줍니다.

다 하고 나니 윤기가 부족합니다.

뭔가 반지르르한 맛이 없습니다.

꿀, 물엿, 올리고당이 또 출동합니다.


다시 휘적휘적.

이제 때깔이 만족스럽습니다.

주홍을 품은 멸치 아몬드 볶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고 밀폐용기에 담습니다.

에게?

딱 2통 나왔습니다.


손 크다 한 거

취소!



자신이 깊은 생각 없이 말을 내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

재빨리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정합니다.

섣부른 말, 잘못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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