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 시험장에서
작년 봄에 집 근처 학원에서
빵 만들기를 배웠습니다.
초여름 즈음 제빵기능사 시험을
치러 갔습니다.
기본 준비물도 있고
집에서 쓰는 익숙한 도구를 가져가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니
하나 둘 챙겨서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보따리만큼이나 커진,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나누어주는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고
부산의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달려갑니다.
먼저 시험장의 자리를 제비로 뽑습니다.
1번!
제일 앞자리!
번호표를 보자 웃음이 나옵니다.
낭패입니다.
30개나 되는
많고 많은 빵 만드는 순서와
발효 시간, 굽는 시간 외우기가 힘이 들어
다른 사람들을 슬쩍 보려고 했던 꼼수는
다 날아갔습니다.
시험장 제일 앞자리에서
야무진 옷차림의 옆자리 2번이랑
간단한 인사를 나눕니다.
야무진 옷차림.
비슷비슷한 요리복과 달리
모자가 저와 다릅니다.
시험 칠 때 모자는 필수 준비물입니다.
물론 저는 TV에 주로 나오는 유명한 셰프처럼
폼나 보이는 기다란 원통 모양의 모자를
선택했습니다.
이 분은 끝이 고무줄로 된
동그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시험을 칠 때
이 모자를 제가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빵을 열심히 만들다 보니
저의 셰프 모자가 슬슬 흘러내려
아주 신경 쓰였습니다.
혹시나 싶어 꽂은 실핀 4개도
소용없었습니다.
만약 원통 모자를 쓰고 시험을 치러 가신다면
실핀을 한 100개 가져가시기를 조언드립니다.
시험이 시작되고
앞쪽의 커다란 흰 보드 칠판에
오늘의 시험 빵 종류가 나옵니다.
두둥!
빵도넛(제빵의 세계에서 꽈배기의 공식 명칭)!
학원에서 시험에 나올 많은 종류의 빵을
두어 달에 걸쳐 다 배우고
마지막 시간에 꽈배기를 배웠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생각났습니다.
"여러분, 시험 치러 가서
꽈배기가 나오면 마음 편하게 즐기고 오십시오.
시간 안에 꽈배기 44개 넘게 못 만듭니다.
즐기세요!"
아!
즐기랍니다.
1번을 배정받은 것도 웃음이 나오는데 꽈배기라니!
우유식빵,
밤식빵,
옥수수 식빵,
버터 톱 식빵,
풀만 식빵.
그 많은 식빵을 놔두고 꽈배기라니!
식빵은 참 멋집니다.
대량 반죽해서
4 덩이만 딱 만들어 구우면 끝입니다.
꽈배기는 만들고 튀기는 것보다
한 개씩 성형을 할 때
분할 무게를 그램으로 맞추어야 하니
분할에 시간이 엄청 걸리는
고난도의 시험 종목입니다.
학원에서 수업을 할 때는
4명이 한 조라
한 사람이 10개 정도만 만들면 되지만
시험은 혼자서 44개 이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작합니다.
우선 재료 계량 시간이 따로 있습니다.
시간 안에 시험실 가운데에 위치한
재료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재료를 퍼 담아 와서
그램 수에 맞게 저울에 달아서
준비를 해 놓는 시간입니다.
처음에 빵 만들기를 배울 때
빵 하나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재료가 들어가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빵이라도
들어가는 재료가 거의 10가지는 되었습니다.
재료의 종류와 그램 수가 적힌 종이는
친절하게 줍니다.
이 종이가 없다면
아찔한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꽈배기는 재료가 12개 들어갑니다.
딱 12분 안에
정확하게 계량을 다해서
그릇에 종류별로 담아 놓아야 합니다.
12분 안에
담아 놓지 못했습니다.
계량 그릇의 무게랑
재료의 무게 생각을 하면서 하다 보니
시간 안에 몇 개를 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초과되면
추가의 시간 없이
다른 사람들이 빵을 만들기 시작할 때
계량을 계속해야 합니다.
시간의 압박을 처음부터 느끼면서
시험을 드디어 시작합니다.
급하게 계량을 하고
감독의 확인을 받고
옆자리의 2번을 흘깃 보면서
박차를 가합니다.
다 섞어 반죽기에 넣고
계량할 때 나온 수많은 그릇을 씻고
반죽을 꺼내어 감독의 확인을 받고
발효기로 들어갑니다.
이때 숨을 좀 돌립니다.
정해진 시간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적당히 반죽을 꺼내 와서 분할을 합니다.
46그램씩 하나하나
저울에 무게를 맞추어 가며
45개 정도로 나눕니다.
이때 감독 몇 분이 돌아다니면서
무게가 맞는지 수시로 확인을 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1g, 1g이 애가 타고 야속한 시간입니다.
44개를 다시 동그랗게 만들고
이제 연필 정도 굵기로 길게 만듭니다.
발효가 되면 탄력이 있어
한 번에 30cm까지 늘어나지 않습니다.
학원에서는 10cm씩 일단 길게 늘이고
다음에 20cm, 30cm
이렇게 3단계로 늘이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늘입니다.
그런데 능력자 2번을 흘깃 보다가 알았습니다.
아, 그분은 2단계로 바로 늘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15cm,
두 번째로 바로 30cm로 뛰어넘고 있습니다.
시간이 생명입니다.
저도 이제 2단계로 막 늘입니다.
기다란 반죽을 가지고 꽈배기를 만듭니다.
학원에서는 세 바퀴 반을 꼬아야
모양이 예쁘다고 합니다.
열심히 세 바퀴 반을 꼬다가
이제는 저의 생명줄 같은 2번을
또 슬쩍 봅니다.
글쎄 2바퀴 반쯤으로
신나게 꼬고 있습니다.
모양은 좀 덜 이쁘지만 이곳은 시험 장소!
다시 말합니다.
시간이 생명입니다.
저도 이제 2바퀴 반으로 막 꼽니다.
어찌해서 한 판을 만들고
발효실로 들여보내고
또 한 판을 만들고
발효실로 또 보내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갑니다.
다른 능력자분들보다
확연히 떨어지는 속도에
이제 시험감독님들은 저를 포기했나 봅니다.
제 옆에 오지도 않습니다.
대신 진행을 도와주는 여사분들이
제 주위를 다니며
큰 도구들을 정리해 주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순서까지
슬쩍 알려 주시기까지 합니다.
"이제 기름 예열해야 할 건데..."
땀을 뻘뻘 흘리며
나머지를 열심히 꼬다가 주위를 보니
다들 기름을 붓고 예열에 들어갔습니다.
저도 동참합니다.
다시 만들고 발효기에 넣고를 반복하다가
발효가 다 된 반죽을 꺼내와서
튀기기 시작합니다.
옆의 2번을 보니
다 튀긴 꽈배기를
한 줄로 예쁘게 줄 세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습니다.
하지만 시간!
시간이 없습니다.
대형 튀김망으로 한꺼번에 와앙 꺼내어
완성 트레이에
무지막지하게 쌓아 올리고
마감 시간을 2분 정도 남겨 두고
터치다운을 했습니다.
(참고로 아직도 튀기고 있는 분들도
서너 명 있었습니다.)
이 터치다운은
순전히 2번 능력자 덕분이었습니다.
산처럼 쌓여 있는 많은 꽈배기들은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점수가 매겨지고 난 뒤
연관 복지 기관에 기부된다고 합니다.
결과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위의 글로
충분히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시험을 치고 나오니
아, 바깥은 여름이었습니다!